Dear Eun,
한국에서 종이책을 선물 받고 기뻐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따뜻한 바람이 여름을 알리고 있어. 이토록 빠른 시간의 흐름에 발맞춰 우리 세상도, 삶도 주변도 아주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아.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디지털 세상이 아닐까 싶어. 얼마 전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눈 떠보니 변해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요즈음, 세상 살기 참 편리해진 것 같아.
독일에 살면서 가장 그리운 것, 한국어
그래도 다행이야. 세상이 빠르게 발전해주니 나는 이곳 독일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자책을 읽을 수 있고, Audio-Book도 들을 수 있잖아.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며 한국의 이야기를 접하고 언제든 얼굴 보며 얘기도 할 수 있으니 사실 한국어는 늘 옆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어의 목마름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책’에 있는 것 같아. 손끝으로 책을 넘기며 느끼는 감각과 ‘샤락’ 하는 소리, 그리고 종이에서 나는 냄새가 없으니 도무지 읽는 느낌이 나지 않더라고. 그래서 한국에서 책 선물을 받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한국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익숙한 것, 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서점이 있기 때문일 거야. 독일에 살며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책 문화인데, 독일 사람들에게 종이책은 그야말로 삶이고 동반자 같은 거더라. 세상은 점점 인간 맞춤형으로 바뀌어 가는데 이곳 독일 사람들은 어쩐지 여전히 그들만의 속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편리한 게 최고’, 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지금까지의 삶을 채워준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며 음미해. 뿐만 아니라 잡지와 신문 또한 여전히 많이 팔리고 그 종류도 아주 다양해.
‘Zum verschenken’ : 선물합니다
길에서도 버려진 책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상태가 좋아. E-bay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선물해. 물론 책뿐만 아니라 옷, 식기 그리고 DVD까지 무궁무진한 길거리 샵이 펼쳐지는데 그 또한 재미를 가져다줘. 이야기가 조금 새 나갔지만, 독일인들에게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 바로 이 DVD와 헌책들이야. 여전히 수많은 가정집에서는 DVD를 통해 가족들과 영화를 보고 헌 책들을 보며 새로운 이야기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 정말 신기하지 않아?
익숙한 게 좋아서, 그래서 변화하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는 익숙한 것을 따르고 싶은 무의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에는 크고 작은 수고와 노력이 따르잖아. 내가 고수하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듯 독일인들에게 무언가를 바꾸고 선택하는 것은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 이전에 ‘독일인이 사랑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할 때 언급했듯 그들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고, 한번 선택한 것을 잘 바꾸지 않아. 그들의 이러한 특성은 삶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데 종이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더 편리한’ 무언가가 생겨나도 내게 맞고 좋은 ‘오래된 그것’으로 만족하고 계속해서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생각보다 편한 종이책과 잡지
독일의 지하철역에는 어디든 작은 Kiosk(키오스크)를 발견할 수 있어. 독일의 편의점인 그곳의 인기상품은 단연 Spiegel잡지와(독일 대표 시사잡지), 그리고 여성지들이야. 그리고 진열된 작은 크기의 베스트셀러들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휴대하기 쉽고 재미있는 것이 많아 나도 자주 구매해. 월간지로 나오는 독일 슈피겔지나 일간 신문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읽기도 쉽고 내용들도 아주 흥미진진해.
한국어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지만 이처럼 여전히 종이책들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 그래도 감사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의 서점에서처럼 화려한 문구류와 즐거운 볼거리는 덜하지만 다양한 글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종이책에 대한 열정을 찾아볼 수 있는 이곳 독일이 이젠 꽤나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해.
Nr.1 스릴러/범죄 도서
그나저나 요즈음 한국에서는 생각을 편안하게 해주는 에세이가 유행한다고? 살아가는 이야기 들으며 나를 위로하고 용기도 얻을 수 있는 에세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양한 것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글. 나도 참 좋아해. 그런데 이곳 독일에서는 조금 달라. 놀라지 마, 10년째 범죄 도서가 베스트셀러란을 가득 매우고 있어. 물론 철학과 심리학이 그 뒤를 이어 따라오지만 부동의 1위는 범죄소설이라는 사실! 절제된 듯 보이지만 카니발 때만 되면 소리를 지르며 열정을 쏟아붓고, 범죄 도서를 사랑하는 그들의 내면은 과연 어떨까? 더욱 궁금해져.
Eun,
이 좋은 봄날, 여름을 기다리며 우리 마음을 책으로 채우자.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상관없이 우리를 기쁘게 할 무언가로 채워보자. 그리고 만날 그 날을 고대하자 우리.
건강하게 지내!
- 작가: 물결 / 예술가
독일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예술심리치료사. 재미있게 사는 것이 좋은 사람.
- 본 글은 물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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