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사이의 왕과 범죄자
독일의 횡단보도에서 일어나는 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편하게 건너간 적이 있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좌우, 건너편까지 여러번을 두리번 거리고, 50m 반경까지 차가 한 대도 안 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건넜던 기억이 자주다.
교통법을 어기거나 뭐를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조심하는 행동이였을 뿐인데….
그 이상요릇 가련해 보이는 습관이 독일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지는 걸 느꼈다.
독일 노이부르크, 나는 신호가 없는 횡단 보도를 건너기 위해 역시나 습관처럼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으려고 횡단 보도 끝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데….
왼쪽에서 오던 차들도, 오른쪽에서 오던 차들도 모두 멈추는 거다. 왜 그러는거지? 무슨 일 있는건가?…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제자리에 그대로 선 채로 저 이상한 차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따라서 건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성곽 안에 있고, 시내는 성곽 밖이라서 항상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 말인 즉, 횡단보도를 건널 일이 하루에도 여러번 씩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어느 날, 이번에도 횡단 보도 끝 지점에 다가가려고 하는데 역시나 양쪽 차선의 차들이 멈추었다. 내가 그래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더니,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손짓을 하는거다. 아마도 성격이 급한 아저씨였던 것 같다. 어리숙한 한 동양인여자가 (이 마을엔 동양인도 별로 없다….) 횡단보도에 가만히 서서 차도를 두리번 거리기만 하고, 건너지도 않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건너편 차선에 있는 차량에게는 내가 건너갈 시간이 아직 한참 있는데도 횡단보도 끝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멈춰서 건너올 때까지 기다린다.
흠… 이제 익숙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횡단보도에서는 끌고 가려고 내리는 중이였다. 그런데 그 포즈만 보고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또 자동차들이 멈춘다….히야~ 정말, 99.9% 모든 운전자들의 습관처럼 보였다.
나머지 0.1%를 의심하며 실험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그냥 지나쳐 걸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횡단보도 쪽으로 갔다. 에이~설마! 하면서 연기했는데… 어떻게 됐을까? 운전자들이 화를 냈을까? 아님 어쩔 수 없이 지나쳐 갔을까?
99.9%+0.1%=100%
차들이 급하게 세운다. 급브레이크가 어려워 끼익 소리내며 급정지한 트럭아저씨는 자기가 못 봐서 미안하다면서 창문을 열고 사과를 하는 것이다. 내가 너무 미안해서 혼났다.
몇 년동안 지켜본 바로는 내 상황에서는 100%였다. 정말 신기하리만큼 놀라운 시민의식이였다.
트럭도, 버스도, 젋은 사람도, 노인도 모두가 철저히 지키는 교통매너인 것이다. (물론 가끔은 그냥 지나가는 차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못 봤을 뿐.)
참고사진 @unsplash
“보행자를 보호하는 운전자가 되야 한다”
자녀들에게는 이런 말로써, 애써 따로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차 안에서는 부모들의 운전 습관을 보고, 밖에서는 다른 어른들의 운전 습관을 보고 자연스럽게 교통규칙을 익히게 된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나는 횡단보도에서 두리번 거리는 보행자들을 위해 멈추고 있다.
그런데….
뒷차들이 그렇게 빵빵거리며 “쟤 왜저래?” 하는 눈빛을 보내고 지나가고, 반대편 차량은 그냥 지나가니, 결국 보행자는 그 이상요릇 가련한 습관대로 두리번 거리며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슬펐던 경우도 있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사람과 그 휠체어를 뒤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길을 건너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멈추어서 건너가시라고 손짓을 했는데, 끌고 계신 분께서 손짓으로 나더러 지나가라고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도 다시 입을 뻥끗거리며 “괜찮아요” 하며 다시 손짓을 했다. 건너가셨을까?
아니다…. ” 저희는 느리니까 그냥 먼저 가세요” 하면서 내 차 뒤쪽으로 움직이셨다.
아…..그 모습과 말씀이 왜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더 강하게 마음먹었다. 느린 분들께는 특히나 더 멈춰서 기다려 드려야지!
(그런데, 사실 난 횡단보도에서만 그렇고, 레이서처럼 빨리 달리는 운전자인 편이다.^^;;)
참고사진@unsplash
하지만, 독일에서 명심해야 할 한 가지!
횡단 보도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에게는 국물도 없다!
절대 단 한명의 운전자도 세우지 않고, 욕을 하거나 혼내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만약 아이와 같이라면? 부모가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게 되니 절대로 시도할 생각도 하면 안된다. 거의 범죄자 취급을 당하게 된다.
(이 말인 즉슨, 내 친구 캐나다인 트레이시를 따라 무단횡단을 했다가 여러 운전자들로부터 뜨거운 레이저 눈빛과 욕을 얻어 먹었다는 경험담…..게다가 8살짜리 아들과 손잡고…. 지금 이자리를 빌어 반성합니다….ㅜㅜ)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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