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길거리에서 급한 전화 한 통화를 요청하는 행인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구텐탁코리아 칼럼리스트 Neven의 생생한 사례와 조심할 점을 알려드립니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아기를 낳기 전에 “세계 곳곳을 더 많이 여행 다니자“ 라는 계획을 새해 계획으로 세운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막 신혼살림을 시작한 우리에게 충분한 여행 경비가 있을 리는 만무했고 그대신 젊음이 있으니 고생하더라도 많은 경험과 문화체험을 해보자는 것이 목적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카우치 써핑‘이라는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는데 전세계 젊은이들이 서로 남는 방 하나와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를 내어주어 서로 숙소 가격을 아끼며 여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커뮤니티였습니다. 소파를 내어주는 호스트와 여행자인 게스트는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신분증을 교환하고, 호스트와 게스트에 대한 후기만 주의해서 잘 읽어보고 선택한다면 위험하거나 나쁠 것 같지 않고, 무엇보다 여행에서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는 매력이 우리 부부를 그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르는 여행자를 받아 주다
그리고 얼마 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본인이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라고 소개한 노아(가명, 당시 20세)는 유럽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함부르크에서 5박 6일간 묵기로 한 호스트가 갑자기 연락이 안되며 본인은 이미 함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해서 오갈 데가 없다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신분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해서 곤란할 것 같다는 말을 듣자마자 여행의 끝 무렵이라 더이상 돈도 없고 무엇보다 함부르크 중앙역이 무섭다며 우는 노아를 끝내 거절하지 못한 우리 부부는 노아의 여권만 사진으로 전송받고 노아를 우리집에 묵게 해주기로 결정 했습니다.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노아는 굉장히 밝고 예의 바른 20대 이스라엘 대학생 이였고, 함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내내 우리집에 머물며 여러가지 이스라엘 문화도 소개받고 서로 굉장히 좋은 추억을 나눴습니다.
우리집 아이피주소로 불법다운로드, 벌금 5,500유로
하지만 당시 독일 생활을 시작한지 약 3년정도 됐었던 나에게 3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노아가 이스라엘로 돌아간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발생했습니다. 집으로 한통의 우편물이 왔는데, 법원에서 보낸 우편물 이었으며 우리 부부가 불법다운로드로 영상을 시청했으며 매우 반복적이고 죄질이 나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벌금이 무려 5,500유로였고 기한 내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소송까지 진행 될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법을 어기기는 커녕, 횡당보도에 차가 없어도 빨간 불이면 절대로 건너지 않는 독일인 신랑은 굉장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고 조심스럽게 혹시 내가 무의식 중에 한국 영상을 공유 혹은 업로드 한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저작권보호에 대한 독일의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높다고 알고 있었으며, 독일에서의 첫 직장 스트레스로 한국 영상을 볼 여유가 없었던 나는 신랑에게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소리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 “노아? 혹시 노아가 아닐까?“ 그리고 나서 법원에서 받은 소장에 기재된 날짜를 확인해 보니 정확히 노아가 우리집에 머물렀던 때와 일치했습니다.
법원에서 받은 소장에는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 업로드한 날자, 대상자(물론 우리 부부 이름), 그리고 아이피주소와 어떤 회사가 원고인지 까지 상세히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다운로드 받은 영상은 주로 미국의 대형 영화사의 영화들 이었으며, 이 영화사들이 계약한 단속업체에서 불법 파일을 전송하고 있는 아이피들을 수집하여 독일의 로펌에 보내면, 독일의 로펌에서 법원에 원고로 소송을 거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소장이 전달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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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주소도 개인정보, 사건 발생 시 본인 책임
그대로 노아에게 확인할 일은 아닌 듯 하여 우선 변호사 친구에게 문의했습니다.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법률적인 조언에 앞서 친구로써 말해준다며 “너희 부부는 커뮤니티를 통한 것이 아닌 개인 번호로 통화하여 그 사람을 집안에 들였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또한 너희들의 개인 정보와도 같은 인터넷 주소를 모르는 사람과 공유 했는데 이것은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다. 운이 좋아 이 정도지 만에 하나 그 사람이 이적 단체로 규정된 사이트 또는 테러리스트단체에 단 한번이라도 접속했다면 모든 책임은 너희 부부가 감당해야 하고 감옥에 갈수도 있는 상황이다“고 우리 부부를 질책했습니다.
실제로 베를린에서는 이웃집에서 인터넷을 잠깐 공유해 달라고 부탁해도 이러한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워낙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전화기를 빌려주거나 인터넷을 공유하는 것은 테러단체 접속 등의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정말 식은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
억울한 일에 대해 행동하기 전, 변호사와 상의
이후 우리 부부는 변호사 친구의 조언에 따라 노아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아낸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안부와 근황 등의 메일이 몇차례 오간 뒤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불법다운로드를 받은 당사자는 본인이라는 자필 편지를 공증받아 벌금과 함께 우리에게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한 뒤, 메일을 더이상 읽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페이스북까지 모두 탈퇴했습니다. 즉, 더이상 우리는 노아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페이스북을 미리 캡쳐 해 두었고 모든 대화는 이메일로 진행 하였기에 큰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의에 대한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니 많이 씁쓸했습니다.
그 이후는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서류, 서류 또 서류제출… 수많은 증거자료 수집과 서류 제출로 이어졌습니다. 노아를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데리고 올 때 받아둔 여권 사진과 주고 받은 이메일을 공증받아 제출했으며, 그 당시 아침 일찍 부부 둘 다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물리적으로 5일동안 매일 밤 영화 시청을 할 수 없다는 증빙자료, 그를 위해 회사에서 근무시간표까지 요청하여 제출해야 했으며, 그동안 영상을 시청했던 패턴과 주로 접속하는 사이트의 목록까지 제출해야 했습니다.
선의에서 빚어진 헤프닝에 대한 비용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제출 한 뒤 한동안 이 일을 잊고 지내다가 작년, 사건 종결 되었다는 짧은 편지를 받고서야 “와…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 일이 있은 후 개인정보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하며 살고 있었구나. 오래도 걸렸네“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변호사 비용1,300유로와 550유로로 벌금을 감형 받아서 총 1,850유로를 지불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값진(?)경험에 대한 비용인 것 같기도 하고 여러가지 조심하며 살아가게 된 것 같아 돈이 그리 아깝지 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직접 겪었던 일이며, 해당 당사자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사건은 2014년에 일어난 일이며 2015년에 변호사에게 위임하여 접수, 2021년 사건 종결되었습니다.
작성: N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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