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27도까지 올라가더니 이번 주는 내도록 최저기온 -1도를 찍는, 거기다 눈보라가 휘날리며 잠깐씩이지만 눈이 지붕에 쌓이는 기이한 4월을 맞이하고 있다. 하도 집에만 있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나를 잠시라도 밖으로 빼내려고 본(Bonn)에 사는 친구가 등산을 하러 가자고 불렀다. 사실 어제까지만 하여도 눈과 비가 오는, 특히 눈보라가 휘날리기 직전에는 대낮에도 갑자기 순간 영화처럼 깜깜 해지는 무서운 날씨에 등산은커녕 밖을 나갈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눈에 보이는 햇빛이 쨍한 바깥을 보며 날씨마저 나를 밖으로 인도해주는구나, 싶은 마음에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였다. 햇빛은 가득하였지만 일기예보에 찍힌 최고기온 9도를 확인하고 편한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 그 위에 체크무늬 난방을 입고 겨울 외투까지 꺼내 입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역 이름은 Bonn-Mehlem이다. 친구가 예전에 가보고 좋아서 소개해주고 싶어 한 곳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역에 먼저 도착한 친구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뛰어서 다가갔더니 어머나!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빵 터져 버렸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친구도 나와 같이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 그 위에 체크무늬 난방을 입고 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다. “우리 오늘 커플룩이니?” 라며 서로 깔깔거리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Siebengebirge로 향했다. 친구의 구수한 한국어로 번역된 이름으로 말하면, “칠봉산”이다. 칠봉산이라니, 듣자마자 고등학생처럼 얼마나 웃었는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칠봉산에는 조그마한 열차를 타고 정상까지 가는 방법과 걸어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이 아닌 사람들이 조금 적게 가는 길을 택하여 걷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은 피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고, 열차는 유로일 뿐만 아니라 열차를 타려면 코로나 신속 검사를 한 결과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에, 그리고 우리는 등산을 하기 위해 만났으므로 열차는 사실 선택지에 처음부터 없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함께하는 첫 등산! 그리고 나의 첫 독일에서의 등산이 시작되었다.
가는 동안 내내 햇빛이 가득하여 가끔은 겨울 외투를 벗고 들고 다닐 정도로 기온에 상관없이 날씨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이 칠봉산에는, 친구의 구수한 한국어로 번역한 이름을 다시금 이용하면, 용궁전(Schloss Drachenburg)과 용돌(Drachenfels)이 있다. 용궁전은 원래 안까지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문이 닫힌 상태라고 한다. 사실 이 용궁전은 역에서 내렸을 때부터 한눈에 보였던 곳이어서 가까워질수록 뭔가 나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용돌은 이 칠봉산의 정상에 있는 요새였는데 전쟁으로 조금 부서졌지만 이를 중심으로 라인강과 함께 본(Bonn)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이 펼쳐지기에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오늘은 날씨까지 맑아 저 멀리 쾰른 돔까지 보여 반가운 마음에 손까지 허공에 흔들 정도였다. 올라오는 내내 공기도 맑고 새소리도 자주 들려 자연 속에서 정말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길치인 둘이 만나 길을 잘 못 들어 조금 험난한 길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무사히,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풍경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 즐거웠다.
한국에서도 등산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듯 여기서도 “Hallo” 혹은 “Guten Tag”이라고 인사하며 웃으면서 지나친다. 특히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면 씽긋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해주고, 인사를 받아주는데 그 순간순간이, 지금 시국이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더 뜻깊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독일 커플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어와서 나는 남성분의 삼성 핸드폰을 받아 들고 한국인의 정신으로 인생 샷을 만들어주었고 그분들께 따봉을 받은 후 뿌듯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많으면 어쩌지 걱정을 하였지만, 생각보다 사람들도 적었고 친구와 나는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면서 좋은 날씨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주치며 등산을 할 수 있었다.
요즘 독일어 공부에 대한 나의 열의가 대단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국에 어디 가서 독일인 친구를 만들 수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을 수도 없기에 배운 독일어들을 독일에 살면서도 써먹을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였는데, 오늘 이렇게 등산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소리치며 이야기하는 말들 속에서 내가 알아듣는 단어들을 알아채고, 사진을 찍어주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산에서 내려온 후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으로 커피를 시키며 점원과 간단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허했던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물론 친구와의 편한 수다가 제일이었지만! 친구 덕분에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배도 잠깐씩 타고 등산도 하며 햇살 가득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 주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다.
내일부터 다시금 또 비가 내리는 하루하루가 될 듯하다. 정말 기적 같은 햇빛 가득한 오늘, 친구와 함께 등산을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 가득 안고 오늘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4월은 눈보라와 함께 벚꽃이 피고 지는, 그 와중에 가끔은 봄이라는 것을 되새겨주듯 햇살이 쨍하게 비추기도 하는 아주 경이로운 달이다.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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