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리석었다. 무지했다. 오만했다. 늦게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병원의 좋은 점을 들라면 규칙적인 식사다. 아침 7시 30분. 오후 12시 30분. 오후 5시 30분. 내게는 걷는 시간을 분배할 좋은 기준점이 된다. 오전에 두 번 항생제 맞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가 내가 걷는 시간이다. 목표는 오전에 다섯 번, 오후에 다섯 번. 무리 아니냐고? 왜 아니겠는가. 매시 정각에 20분을 걷고 돌아오면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40분을 쉬고 다시 일어날 때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왜 이렇게 무리를 하냐고 물으신다면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병원의 24시를 견디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까다로운 팔순의 할머니가 내 침대 옆 룸메이트일 때는 더더욱. 할머니도 심심하시겠지. 그러나 할머니의 심심함은 할머니의 몫. 나는 내 몫의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쉼 없이 걷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영업 종료는 저녁 7시.
새벽 6시는 한가하다. 간호사와 조무사들을 빼고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걷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왜 이렇게 일찍 시작하냐고? 새벽 5시부터 걸을 수는 없으니까. 좀비도 아니고. 이 병원은 복도에 데스크를 설치하고, 담당 간호사와 조무사들이 상시 근무 중이다. 굉장히 유연한 근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복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스크를 지나고, 링거대를 밀거나 보조기를 사용하는 환자들을 지나고, 때론 수술실로 오가는 침대까지 피해 가며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금방 적응하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점차 익숙해지는 걸 보면. 어떤 날은 발걸음이 날 듯이 가볍다가 어떤 날은 모래주머니를 단 듯 천근만근이다. 컨디션이야 어떻든 나는 걷는다, 가 요즘 내 일상의 전부다.
이틀째 수면제 반 알의 힘을 빌어 5시간 정도 잤다. 깊은 숙면은 아니었다. 옆집에서 파티를 하는데 자다 깨다 하는 느낌. 반 알의 효과는 늘 새벽 세 시까지였다. 뒤척이다 보면 항생제를 맞는 시간인 새벽 4시가 온다. 새벽 5시에는 탕비실과 화장실을 다녀온다. 걸으려면 아직 1시간이 남았다. 압박 스타킹을 신고 운동화를 신고 대기한다. 어쩌다 내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모든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후회와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 이번에도 닥친 일에만 집중한다. 무사히 퇴원하고, 그때까지 열심히 걷고, 다리 힘을 기르기로 한다. 무사히 독일에 돌아갈 그날까지. 다만 한 가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으며 어리석고 오만하고 방자했는지를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살았다. 내 생각만 옳은 줄 알고 남의 충고를 무시하고 살았다. 이것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이제야 인간이 되려는지.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다. 눈물을 별로 흘리고 살지 않아서. 특히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맙고 미안해서. 받은 것에 비해 못 해 준 게 너무 많아서. 이런 상황에서도 매일 웃는 얼굴로 전화를 해주는 사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비난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남편에게 나는 어떤 아내였던가. 돌아보면 고개를 들 수 없다. 무사히 집에 돌아간다면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할 생각이다. 항암이든 뭐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암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가 바라는 건 소박한데. 밝고 긍정적인 아내의 모습. 행복한 아내의 미소.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동안 나는 남편에게 짜증만 냈을까. 시누이 바바라와도 잘 지낼 작정이다. 바바라가 문제가 아니라 바바라를 싫어했던 나 자신이 문제였다. 미운 사람의 말은 곱게 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아이와도 매일 영상 통화를 한다. 그때마다 운다. 저절로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하나. 어느 날 밤에는 아이가 카톡을 했다. 독일 시간으로 밤 10시.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와. 빨리 와. 그 톡을 보고 또 울었다. 어쩌자고 남편과 아이를 두고 올 생각을 했을까. 제정신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수술 두 달 후에. 항암을 시작했어야 할 그 시점에. 어쩌나, 다 지난 일인 걸. 그래도 아이는 잘 버텨주고 있다. 내가 떠날 때 쥐 세 마리를 입양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쥐들을 돌보며 버티는 듯하다. 쥐들이 아이에게 곁을 내주는 것도 고맙다. 어제는 아이가 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이 손을 베고 자더라고 자랑을 했다. 절친 율리아나와 한나 엄마가 아이를 불러 친구들과 지내게 해 주는 것도 고맙다. 아이는 엄마가 자꾸 우는 게 싫단다. 전화 끊고 나서 울란다. 그러겠다고 울며 약속했다.
이번 일로 내가 알게 된 건 독일이 내 집이라는 것. 내 가족은 남편과 아이와 힐더가드 어머니라는 것. 놀랍게도 내가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두 번 왓츠앱을 보내셨다. 처음엔 내가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물으셨다. 친정 식구들과 즐겁게 지내길 바라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겠다고.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꼭 약속한 날짜에 돌아가겠다고. 그다음 주가 독일의 어머니 날이기 때문에. 두 번째 톡은 내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아시고 놀라서 보내셨다. 잘 회복되길 바란다고, 꼭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고. 어머니의 왓쯔앱을 읽고 또 울었다. 염려 마세요. 꼭 돌아갈게요. 독일이 제 집이에요, 어머니. 어머니가 제 가족이고요.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네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이번 귀국은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나 싶을 정도다. 하마터면 목숨까지 걸 뻔했지만.
P.S. 구독자님들께
- 병원에 입원 후 두 주 이상 글을 못 쓴 채 고민이 깊었습니다. 믿기 힘든 이 엄청난 일을 밝혀야 하나. 어떻게? 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서요. 일단 퇴원해서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데 두 주 동안 매일 100명이 넘는 분들이 제 브런치를 들르시지 뭡니까. 제 소식이 궁금하셔서였겠죠. 잘 지내는지,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그분들께 소식을 전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지요. 따뜻한 댓글들에 일일이 답하지 못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늘 많은 위로를 얻는다는 것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 아직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댓글로 주신 채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참고하겠습니다. 아직도 고기에는 손이 잘 안 가지만 생선은 잘 먹고 있습니다. 어제는 병원에서 명태조림이 나왔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게 눈 감추듯 알뜰하고 살뜰하게 발라먹었답니다. 골고루 잘 먹고 빨리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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