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죽 한 그릇의 부담감
하필이면 뜨거운 호박죽이라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읽다가 내가 겪은 고부 관계가 떠올랐다. 아이만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린 선녀처럼 시댁과 영영 만나지 못할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였다. 선녀 따라 하늘로 올라갔던 남편은 홀어머니 생각에 근심스러울 때 지상에 내려갈 방도를 얻는다. 단 말에서 내리면 안 되고 말이 세 번 울기 전에 하늘로 올라와야 하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아들을 만나 반가운 어머니는 뭐라도 먹일 심산으로 뜨거운 호박죽을 준다. 하필이면 뜨거운 호박죽이라니! 너무 뜨거운 호박죽을 먹다 흘린 나무꾼은 하늘나라에서 타고 온 말에서 떨어지고 영영 부인과 자식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고부 갈등은 이처럼 장성한 자식이 가족을 건강하게 꾸려가는 데 엄청난 장애로 작동한다. 선녀처럼 자식만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부부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떻게든 이겨보겠는데 외부 환경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영향을 받는 일은 참기 어렵다. 남편 원 가족과의 관계가 그랬다. 시댁과의 갈등은 참기 어려운 외부 환경에 속한다. ‘내 가족은 배우자를 힘들게 하지 않는데 왜 남편 가족은 나를 힘들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고 억울했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부당한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게 바로 결혼 제도의 불합리한 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결혼 후, 남편은 몸은 나와 살지만, 여전히 원 가족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탯줄이 남편을 끊임없이 조종하는 듯 보였다. 탯줄이 제대로 끊기지 못한 두 남녀가 결혼해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예상보다 많다. 여러 요인 중에 부모가 결혼한 자녀를 한 가정을 이룬 독립체가 아닌 여전히 품 안의 자식으로만 묶여두려는 마음으로 인한 갈등이다. 때로는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건네는 ‘뜨거운 호박죽 한 그릇’이 화상을 입히거나 부인과 영영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이라기보다는 원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되지 못하고 두 집 살림하는 꼴이다. 일거수일투족을 원 가족에게 보고하거나 간섭하는 일은 정서적으로 전혀 분리되지 않은 모습이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여러 모양의 간섭이 탯줄인 줄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콩깍지가 씌었고 판단력이 흐렸다. 밀착된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부모님께서 주시는 모든 관심을 그저 무한한 애정이라 여기고 감사했다. 지나고 보니 단순한 애정이 아니었다. 결혼 후 한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원 가족과 분리되지 못한 탯줄이 끊기지 않은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신기하게도 자녀가 태어나고 남편 가족 안의 문제가 불거졌다. 말하자면 복잡한데,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분석해보자면 남편과 동생과의 문제, 즉 형에 대한 불만을 새 식구에게 표출한 셈이다. 나로선 생사람 잡는 일이 벌어졌고 하극상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남편 동생이 형수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했음에도 자식 편을 들었다. 교통정리 제대로 해주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오래갔다. 남편이 내 편에 서지 않았다면 평생 분노하며 지금까지 함께 살기 어려웠을 거다.
마음이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끔찍한 효자인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락과 방문을 강요했다. 사건이 매듭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린 매일 ‘사느니 마느니’ 전쟁같이 싸웠다. 내 생에 그토록 치열하게 누군가와 꾸준히 싸웠던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부 싸움의 피해자는 가장 소중한 자녀다. 어둡고 긴 터널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작가: 김유진 / 에세이스트,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저자
한국에선 가족치료 공부 후 부모 교육을 했으며 현재 마더코칭연구소를 운영하며 2016년 여름부터 독일에 삽니다.
- 본 글은 김유진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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