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텐탁코리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꾸준히 취미로 음악활동을 하시면서 이번에 보이스 오브 저머니에 출연을 하셨는데요, 우선 너무 너무 축하드립니다. Voice of Germany, 올 턴!!!
그래서 노래 이야기부터 안 할 수가 없군요, 대학교 때 혼자 연습한 노래 실력으로 학교 내 가요제 1등을 하고 학교의 유명한 그룹사운드 보컬로 스카우트를 당했는데요, 대학교 때 밴드 활동은 어땠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생일에 친구가 Helloween이라는 독일 밴드의 베스트 앨범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거기 보컬이 Michael Kiske 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엄청 따라하게 됐고, 그냥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나중에 독일 가서 저먼 메탈 함 해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숫기 없다고 아버지한테 맨날 혼나던 놈이었는데 말이죠. 대학교에 진학해서 1학년 때는 보디빌딩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1학년 말에 등떠밀려 교내 가요제에 나갔다가 의도치 않게 1등을 한 후에 교내에서 역사가 깊은 밴드에서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 들어가서는 밴드 연습보다는 맨날 술만 먹었던 것 같아요. 물론 공부도 점점 멀어지고요.
밴드이름이 “화려한 혈통”이었는데, “화려한 술통”이라는 별명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선후배간 규율이 굉장히 엄격했습니다.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실력들이 모두 기본 이상은 되었고, 현재 음악계 곳곳에서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과 직장인 밴드 생활을 병행하시다가 독일로 오셨다고 했는데요, 독일에 와서도 바로 밴드 생활을 이어가셨나요?
2014년 여름에 독일에 오게 되었고, 저는 해외 생활을 처음 하는거라 당연히 독일어를 못하고, 영어 또한 엄청난 도전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살 때 주변에 물어물어 밴드 구인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찾은 밴드 오디션에 지원해서 잠깐 합주만 몇 번 하다가 2015년도 가을에 도르트문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새로운 곳, 그것도 외국에서 생활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 밴드를 할 여유가 없었고 2017년도에야 주변의 커버 밴드를 찾게 되었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어요. 제 목소리를 상당히 좋아해서 곡 list up을 제 목소리에 맞게 모두 바꾸고 아예 밴드 이름도 제 영어 이름을 따서 The Henry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의 공연을 하고 기타 치시던 두 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코로나사태도 터져서 사실상 해체되었죠.
독일에서 나이드신 분들과 첫 밴드 생활을 하셨군요, 그 이후에는 좀 더 젊은피들과 함께 뭉쳤다고 들었습니다. 현재의 밴드에 대해서 소개해 주실래요?
2019년도에 Bochum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재의 밴드 Beyond Redemption이라는 파워 메탈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완전 아마추어는 아니고, 세미 프로 정도되는 밴드입니다. 제가 밴드구인사이트에서 발견했을 때 카테고리가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본인의 업은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진중하게 생각하면서, 왕년에 프로 밴드에서 활동한 친구들도 있고, 본인 앨범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커버하는 밴드는 아니고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입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 밴드가 오래 쉬다가 다시 시작하는 찰나였고, 멤버가 모두 모여 시작하려는 순간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 이후 사실상 지금까지 활동이 없습니다. 쉬면서 앨범 녹음하자고 했는데, 게을러서 아직도 못하고 있네요. 저희 밴드 홈페이지입니다.
안타깝군요, 그럼 코로나 기간 동안은 어떻게 연습을 지속하셨나요?
계속 쉬다가 회사도 안 나가고 너무 심심해서 연습실에서 혼자 노래 부르고 그걸 녹화해서 제 유튜브 계정에 하나씩 올리다가 연습실 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집에다가 아주 자그마한 보컬 부스를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가끔 목도 풀고 스트레스도 풀곤 했습니다. 제가 부른 것 중에 제가 좋아하는 Firehouse 곡 중에 하나 조용한 거 하나, 신나는 거 하나 소개할게요.
그러던 와중에 올해 초에 밴드 오디션에서 알게 된 친구가 디지털 싱글을 내는데 보컬 피쳐링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 생애 처음으로 공식 발매 음원에 제 목소리를 싣기도 했습니다.
첫 테이크로 녹음해서 “이렇게 하면 돼?” 하고 물어보며 보냈는데 그걸 그냥 릴리즈 해버려서 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생애 첫 음원이라 최대한 잘 하고 싶었는데, Neonyzer – The Warlock of Science 라는 곡인데, 전세계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 아마존 뮤직,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등) 어디에서나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 유튜브 채널에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보이스 오브 저머니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작년에는 한인 2세가 참가를 했었는데요, 그 친구는 랩을 하고 2세이기 때문에 언어적인 어려움도 없었을 텐데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그리고 독일어의 장벽도 있는데, 어떻게 지원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한국에서도 그런데 나갈 생각조차 안 해봤고, 독일에서는 더더욱이 언어 문제도 있고 해서 관심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술김에 신청을 했습니다. 작년 말에 지인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서 음악 들으면서 술 한잔 하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광고를 발견하고, 무슨 용기였는지 “why not?” 하면서 말도 안되는 독일어로 지원서를 써넣었죠. 술김이라 뭐라고 썼는지, 어떤 곡을 업로드 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그리고 나서 첫 인터뷰에서 독일어 못해서 안될것 같다라고 하니까 바로 영어로 전환하면서 모두 영어 잘 하니까 문제 없다며 격려해줬습니다.
인터넷 지원 후 지난 주의 블라인드 오디션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몇번의 화상 면접을 거치고 – 코로나 때문에 대면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 최종 합격을 한 후에 최종 오디션 (블라인드 오디션에 나갈 사람을 정하는 최종 선발 오디션)을 하기 전에 후보곡 리스트를 받고 거기서 골라야 하는데 오디션곡을 100%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는 점이 좀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선발 오디션 직전에 곡을 알려주더군요. 어쨌든 아침 8시인가 베를린에서 했는데, 그런 경험이 처음이고 새벽에 미리 일어나서 목을 풀었는데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결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음악이 대부분 고음을 내야 하는 것들이라 아침에 더더욱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주 후에 최종 합격 통보 전화를 받고 나서 블라인드 오디션 녹화 전까지 총 2번 베를린 방송국에 방문했습니다.
수많은 인터뷰, 촬영, 의상 피팅 등등… 그런데 합주는 딱 1번씩만 하더군요. 방송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밴드랑 합주한 건 딱 2번인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붙든 떨어지든 블라인드 오디션까지 나온 사람들은 엄청난 중압감과 긴장감을 이겨내고 나온, 보통 사람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다수 앨범을 보유하고 이미 방송도 출연했고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프로들이더군요…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블라인드 오디션에 나가셨군요. 그 날 당일에 어땠나요? 긴장을 많이 하셨나요? 밴드와 노래를 맞춰보고, 무대에 나갈 때의 기분, 심사위원들이 한 명 한명 돌 때 마다 기분이 어땠나요?
방송국에 몇번 가면서 대부분의 시간에 했던 건 기다림이었습니다. 잠깐 인터뷰 하고 몇시간 기다리고, 사진 찍고 몇시간 기다리고… 그날도 가족과 함께 인터뷰하고 밤 10시까지 기다렸습니다.
긴장은 안 했는데, 제 순서가 거의 마지막인 걸 알고 목이 잠길까 걱정은 좀 했습니다. 당일은 합주가 없고, 바로 무대에 올라갑니다. 무대 뒤에서 카메라 들이대면서 각오 물어볼 때 모두를 놀라게 할거라고 말한 것만 생각나네요.
노래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안됐는데, 다만 독일어가 걱정이었습니다. 보컬 코치가 심사위원 절대 보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누가 도는지… 1절 끝나고 아무도 안 돌길래 “그래, 어차피 킬링포인트는 뒤에 있다!”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그 킬링포인트가 나오기 전에 마크 포스터가 돌았고, 1차 킬링포인트 나오고 나머지 3명이 모두 돌더군요.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나니 “아! 이제 끝났네.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여러 질문에 약간은 긴장한 티는 났지만 잘 대답하고 대화를 잘 이어간 것 같은데요, 그 때 당시 어떤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나요? ^^
노래 보다는 독일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독일어 못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지라… 특히 사전 인터뷰 때 제가 독일어 못해서 진행자였던 Lena Gercke가 당황했던 것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근데 이상하게 무대 위에서는 다 들리더라구요. 한두개 잘못 알아들은 것도 있는데, 대부분 다 알아듣고 단답형으로 쉽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도 보니 그냥 vielen dank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서 저도 그냥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올턴이라 마음이 좀 편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보이스 오브 저머니의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지난번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정일홍이라는 락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요, 어떻게 기대하고 계신가요?
다음은 배틀오디션인데, 거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곡 배정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한곡을 나눠 불러야 하고… 그래서 떨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지만, 거기만 통과한다면 더 높이 갈 자신도 있습니다.
락/메탈 말고 발라드도 자신 있는데, 좋은 곡 받아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정홍일 그분의 방송 영상 봤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프로 뮤지션이었고 저는 그분과는 달리 평범한 직장인이고 또 한국과 독일의 음악 시장 경향이 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한국 방송 보면 rock 음악들이 부흥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정홍일씨 뿐 아니라, 얼마전에 방송했던 슈퍼밴드2에서 우승한 크랙샷같은 밴드가 아주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보이스 오브 저머니에서도 계속 응원하고, 꼭 나중에 문자 투표하는 라운드까지 올라가서 우리 한인 교민들이 모두 문자로 응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스 오브 저머니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열정의 모습 계속 보여주세요 ^^
- 작성: 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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