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 때에는 강민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저 자연을 만나는 일상이 대부분이였던 것 같다.
특별히 이웃 친구나 주로 가는 곳의 중요성이 크게 차지 하지 않았었다.
독일에서의 첫 1년은 유치원을 다니면서, 놀이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유치원이 끝나고 그 근처 놀이터에 다시 모여서 놀고나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상과, 동네 놀이터에서 저녁 먹기 전까지 노는 것.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는 동네 친구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진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지는 것 같다.
1.바쁜친구
얼마전까지 살았던 동네는 우리 작은 도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성 주변이였는데 집 값이 비싼 곳이기도 하고, 성, 박물관, 시립극장, 시청, 중앙성당, 여행자정보센터, 시립도서관, 마리오네트인형극단 공연장 등 도시의 주요기관들이 대부분이고 민간인의 집은 많지 않은 곳이였다.
우리 집도 400년 된 집이였는데,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기본채는 모두 그대로이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상태다. 아주 깨끗하고, 따뜻하고 해 잘 들고 잘 살았다.
바로 옆집에 미국인/독일인 부부와 4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금방 친해 질 수가 있었다. 4명의 아이 중 9살의 Cornellius가 강민이와 잘 놀았다. 하지만 학교 수업 외의 스케쥴이 꽉 차있어서 같이 놀 시간은 별로 없었다. (월요일 기타, 화요일 달리기, 수요일 수영, 목요일 피아노, 금요일 교리공부)
그리고 가족이 많다보니 행사도 많고 가족끼리 움직이고 지낸다. 그래서 주로 만나는 시간은 성당 끝나고 1시간 정도, 아침에 등교를 함께 하는 정도였다.
부모가 교육열이 높고 지식인들이라 아이들에게 지식전달을 많이 하는 편인 것으로 보였다. 2살부터 11살까지 네 명의 아이들과 매일 전쟁을 치룰텐데 그 안에서도 삶의 조율을 찾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아침에 학교를 걸어가는 거리는 5분 정도인데, 둘이서는 15분정도 걸려느긋하게 걸어간다.
성곽을 내려가는 터널에서 만나는 비둘기,
매일 모습이 바뀌는 푸른 도나우 강,
다리 난간에서 만나는 거미와 오리,
항상 같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는 까마귀,
물속학교에 살고 있는 어린물고기들,
겨울만의 묘미 얼음과 가벼운 눈가루..
둘이 걸으면서 9살의 형은 7살의 동생에게 옛날 도나우 강이 얼었던 역사나 번개에 대하여, 비둘기의 죽음에 대하여, 카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나 보다. 강민이에게는 빠른 독일어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귀 기울여 듣고 나에게 다시 들려주는 게 참 기특했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느낀 점은, 가끔 Conellius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린이만의 순수한 상상력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은 없었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예절 바르고, 바른 학생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표현을 잘 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무엇을 물어볼때마다 대답은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된다, 엄마가 알고 있다.. 이런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같이 걸어갈때면, 정문에서 꼬옥 안아주고 끝까지 손흔들어 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이. 지금도 매주 화요일엔 Leicht Athletik (가벼운 육상운동?) 을 함께 하고 있는 좋은 친구다.
2.Play date (날짜를 정해서 1:1의 놀이)
주변 사람들이 조언 해 준 부분이 있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먼저 적극적으로 Play date를 잡으라고 했다.
처음엔 어색하기도 하고, 강민이가 특별히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생기면 그때 하기로 기다리고 있었다.
3개월 정도 지나서 이름을 자주 꺼내는 친구가 몇 명 생겼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기도 놀러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본인의 물건이나 장난감을 만지는 것도 싫어하고 뭘하고 놀아야 할지를 몰라하더니 세 번째부터는 감을 잡았는지 잘 빌려주기도, 선물로 주기도, 잘 놀고 있다.
다행히도 강민이는 뛰어난 운동감각과 타고난 유머감각과 매너를 겸비하고 있어서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 모두 좋아한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이 곳에서도 아이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인종차별이 있어서 같이 노는 부류가 나뉘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그 중에서 강민이는 교집합인 듯 보인다. 여러 방면으로 마음이 열려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강민이의 성격이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
3.한가한 친구들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꽃이 피는 4월에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성곽에서는 내려왔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동네라 모든 곳을 가기가 편리하다. 학교, 슈퍼, 도서관, 빵집, 세탁소, 우체국 등등.
뭐 그런 거에 상관없이, Aurell이란 같은 반 친구가 같은 골목, 4 집 건너에 살고 있고, Aurell 동생과 맞은편에 살고 있는 이웃 모하마드, 호쳐와 친구 먹고 잘 논다. 보니까
사실 Aurell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고, 냄새가 나서 싫다고 등교를 같이 안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고보니 Aurell은 독일인 친구들 생일파티에 초대를 한 번도 받지 못했었다. 그런 강민이의 반응도 초대하지 않는 아이들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 애는 냄새가 나서 싫어요! 라고 할 때, 해 줄 수 있는 말>
"냄새가 나는 것은 너의 코가 경찰견들처럼 훌륭한 능력이 있어서 냄새를 유난히
잘 맡아서 그런 것이고, 아마도 너가 좋아하지 않는 로션을 발랐다거나 그런 향기의
샴푸를 써서 그런 건 아닐까?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고 싫어하는 향기가 있어서 어쩌면
Aurell도 너가 바르는 로션이나 샴푸 중에 좋아하지 않는게 있을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urell이 나쁜 사람이거나 더러운 사람은 아니야.
그냥 사람마다 각자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던 강민이가 이사와서 다음날부터 그냥 나가서 어울려 논다.
우리 어릴때처럼, 집 앞 골목에서 자전거도 타고, 공놀이도 하고, 모여서 과자도 먹고, 돈 가져온 친구가 있으면 우루루 몰려 가서 자판기 뽑기도 하고… ( 사실 나가면 뭐하고 노는지 잘 안 봐서 더 자세히는 모른다.)
집 앞 골목은 일방통행 길이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고, 중간 중간에 서로의 집에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조금 멀리 가려고 하면 반드시 각자의 부모에게 허락을 묻는다. 내 책상은 창문을 향해 두었고, 대문앞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간간히 보이고, 떠드는 소리도 들리기도 한다. 너무 긴 시간동안 집에 들르지 않으면 가끔 나가 보기도 한다. 골목에는 어느 부모의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다들 밥시간에 찾으러 나오는 정도이다. 나도 그런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부연적으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나가서 아이들 이름도 물어보고, 도서관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가까운데도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단다.)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우르르 집에 몰려오면 사탕을 나눠주는 적응노력도 추가하고 있다.
나의 어렸을 적의 놀이를 생각해보면, 놀이터는 멀어서 못 갔던 것 같고, 골목에서 계주달리기, 말방까기, 고무줄, 오징어, 비석놀이, 담장넘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뭐 이런것들 하고 논 것 같은데.. 해가 뉘엇뉘엇 져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들어가도 끝까지 남아있고 싶어했고, 달리기는 항상 자신있게 이겼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셨고, 동네 친구네 부모 대부분이 일하고 저녁에 오셨던 것 같다. 부모가 같이 놀아준다는 건 상상도 안했던 것 같은데, 요즘세상엔 같이 놀아주는 재미있는 부모가 인기있는 부모라고 한다지?
주중에는 노는 시간이 몇 시간 안되니까 매일 아쉬워하더니, 처음 주말엔 점심식사,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나가서 놀더니 4월인데도 벌써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이제 14일간의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스페인 시골 산골짜기에 염소 200마리를 키우는 노인 부부의 집에 Helpex로 가려고 했었다. 염소치기 개 두 마리와 함께 매일 산골짜기,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다녀야 하고, 요리를 해 드리며 잠자리와 음식을 받게 된다. 조금은 고되겠지만 강민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계획한 것 인데..
다시 한 번 여러번 고민해보았다.
나의 계획이 진정으로 강민이가 원하는 방학일지, 강민이는 무얼 더 원할지..그리고 대화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주 소박한 바램이 있었다. 동네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놀고 싶다는 거였다.
지난 주에는 박물관, 놀이동산, 엄마랑 싸움놀이 등 스케쥴을 꽉 차게 써놓더니 현실은 매일 나가서 놀 궁리만 하고 있다.
나는 여행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집에 있기로 마음 먹었다. 조용히 쉬면서 공부에 집중하고 음식솜씨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서 이웃들과 나눠먹고 강민이도 실컷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별 거 하지 않아도 그냥 친구들 몇 모이면 빈둥빈둥 노는게 재미있다는 건 정말 참 신기하다.
집에 있는 장난감도 필요없다. 대단한 곳을 가는 것도 필요없다. 그저 친구만 있으면 좋은가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브루스리 (이소룡) 영상 한 개 보고,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면 인터폰으로 대답하고 바람같이 휘리릭 나간다.
그리고 점심 먹을 시간이 되면 나는 나가서 강민이를 부른다.
지금도
"엄마, 놀다 올께, 이따봐~“
하고 나가는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보낸다..
이 모든 다른 모습의 놀이들 모두 놀이가 맞다.
다만 어릴적의 진정한 놀이는 일상생활에서 그냥 편하게 슬리퍼 끌고 나가서 친구들과 길에 앉아 낄낄거리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바빠야 아이들을 놔준다. 엄마가 바쁜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
하지만 하루의 마무리에 아이들 마음을 어루 만져주고 하루 일과를 물어봐 주는 시간은 반드시 내야 한다.
부모는 당연히, 어떤 성격의 친구와 노는지, 어떤 부모의 아이들인지, 거친 말을 쓰지는 않는지, 공격적인 아이들은 아닌지, 공부에 도움이 되는 친구인지, 나가서 싸우는 건 아닌지 등등의 걱정거리가 가득할 것이다.
글쎄…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부모가 정해줄 수 있는 건 주변 환경 뿐이다. 선호하는 동네라던가 도시라던가.
그 뿐이다. 더 이상의 셋팅을 더 해주고 할 일 다했다는 마냥 손 떼놓고 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어디에서 뭘하고 놀고 들어왔던지간에, 집에 들어온 순간, 잘 놀았는지 물어보고 마주 앉아서 어땠는지 무슨 놀이를 했는지, 어떤 놀이가 제일 좋았는지, 싫었던 건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다면 기분이 어땠는지.. 우선 다 들어주는 일을 하자.
옳고 그름을 지적하지 말고, 우선은 끝까지 다 쏟아낼때까지 들어주자. 감정표현의 기회를 주면서 (단어의 예를 주면 더 쉽게 표현한다. 화났는지, 신났는지, 미안했는지, 슬펐는지, 속상했는지..등등)
맞장구를 쳐 주면서 모두 다 듣고 나면 마음을 헤아려 준다음, 그 중에서 옳은 행동과 그른 행동을 구분하여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옳고 그른 행동의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유아동 나이에 부모가 반드시 해 주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반복한다면, 아이에게 부모는,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편안한 존재로,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는 좋은 친구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어른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작가: 이연재/기획자
독일과 한국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노는 곳을 연구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 본 글은 이연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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