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실시된 독일 연방 하원의원 선거(총선)는 독일은 물론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2005년 이래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어 왔던 앙겔라 메르켈 시대가 끝나고 정치 변화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 제1위의 경제국이자 유럽연합(EU)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독일을 메르켈에 이어 누가 이끌어 갈지도 관심이었다.
총선 결과 사민당이 25.7%(206석)를 얻어 제1당이 되면서 16년 만에 집권 가능성을 열었다. 사민당은 1.6%(10석)의 근소한 차이로 기민/기사당에 앞섰다. 총선 2달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15%대에 머물러 집권 가능성이 낮았던 사민당을 제1당으로 끌어올린 이는 바로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슐츠는 올해 63세로 의회, 주정부, 연방 정부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비록 사민당에 대한 지지는 낮았으나 숄츠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는 다른 2명의 총리 후보들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기민/기사당은 당 대표이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총리인 아르민 라셰트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8.9% 줄어든 24.1%(196석)를 얻는데 그쳐 제2당으로 떨어졌다. 녹색당은 한 때 지지율이 25%까지 치솟자 총리 배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 공동 대표인 아날레나 배르보크를 후보로 내세웠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녹색당은 5.8% 증가한 14.8%(118석)를 얻어 제6당에서 단숨에 제3당으로 올라섰다. 친 기업 성향의 자민당(FDP)은 0.7% 증가한 11.5%(92석)를 얻어 제4당이 되었고, 극우 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은 2.3% 줄어든 10.3%(83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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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의 특징을 알아보자.
첫째, 독일 국민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안정을 택했다는 점이다. 총선 전에 사민당은 녹색당만으로는 연정 수립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좌파당과 함께 좌파 연정을 수립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좌파당의 부진으로 좌파 연정은 무산됐고, 친 기업 성향인 자민당의 연정 참여가 확실시되어 좌파 정책 추진이 쉽지 않게 됐다.
둘째, 독일 국민의 정치 성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정당(Volkspartei)’으로 오랫동안 높은 지지를 받아왔던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의 득표율이 동시에 20%대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젊은 층들이 녹색당과 자민당의 지지로 옮겨가고 있으며, 특히 기후 문제에 민감하여 녹색당 지지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셋째, 녹색당과 자민당의 연정(聯政) 참여가 확실시 되어 두 정당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민당과 기민/기사당의 대연정도 가능은 하나 두 정당이 이미 지난 4년 동안 연정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성은 적다.
넷째, 동독 지역 주민들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해 왔던 좌파당이 퇴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독 공산당의 후신으로 동독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좌파당은 지난 총선보다 4.3% 줄어든 4.9%를 얻어 의회 진출이 무산될 뻔했다. 지역구에서 3명이 당선되어 비례대표에서 36석을 추가로 얻어 39석으로 의회에 진출하게 됐다.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려면 득표율이 5% 이상이거나 지역구에서 3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다섯째, 의석이 선거법에 정한 의석수(598석) 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선거법상 정원은 598석(지역구 299석, 비례대표 299석)이나 ‘초과 의석’과 ‘균형 의석’ 제도로 인해 무려 22.9%인 137석이 늘어나 총 735석이 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장점이 있으나, 이처럼 의석이 많이 늘어나는 것이 큰 단점이다.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참고할 내용이다.
여섯째, 우편 투표(Briefwahl)의 비율이 역대 최고로 높았다는 점이다. 우편투표는 일종의 사전 투표제도로 투표장에 가기 어려운 노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1957년에 도입했다. 우편투표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7년에 28.6%였으나 20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40%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은 투표를 일요일에 하고 있다. 그래도 투표율은 76.6%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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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 인물론이 지배했지만 정당들이 공약도 제시했다. 외교정책보다는 국내 문제에 집중되었으며 기후관련 정책이 압도적이었다. 용어도 ‘기후변화(Klimawandel)’에서 ‘기후보호(Klimaschutz)’로 바꿔 쓰며, 기후보호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코로나 방역, 디지털 교육 강화, 난민 문제 등도 있었다.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50%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연정 수립 협상이 남아있다. 우선 제1당이 된 사민당이 주도하는 녹색당(녹색), 자민당(노랑)과의 신호등 연정 가능성이 크다. 3개 정당의 색이 신호등의 색과 같아 붙여졌다. 신호등 연정이 무산될 경우에는 기민/기사당(검정)이 주도하는 녹색당, 자민당과의 자메이카 연정도 가능하다. 자메이카 연정은 3개 정당의 색이 자메이카의 국기 색과 같아 그렇게 불린다.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은 연정 수립을 위한 예비 협상을 시작했다. 다만, 세 정당의 정책이 대립하는 분야가 있어 모두 만족시키는 협상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보호 관련, 녹색당 정책이 가장 강하고, 사민당은 중간을 자민당은 다소 완화된 입장이다. 또한 자민당은 코로나로 과도하게 풀린 재정을 억제하여 평상시의 안정과 성장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사민당과 녹색당은 투자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 자민당은 사민당과 달리 법인세 인하, 소득세 개편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사민당은 광역 밴드 확충, 학교에서 디지털 교육 강화, 최저임금 인상, 근거리 교통 시스템 확충 등을 공약했다.
따라서 사민당이 연정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녹색당과 자민당이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세 정당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릴 경우 연정 협상이 년 말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0년 9월에 ‘인도 · 태평양 전략’을 채택하여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중시하고 있다. 인도 · 태평양 지역이 미래의 국제질서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외교는 과도하게 주변 4강국에 집중되어 왔다. 이제 우리의 외교 활동도 주변 4강국을 넘어 유럽연합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독일과의 관계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작성자의 동의하에 독일 정치 문화 연구소의 글을 공유한 글입니다.
- 작성: 손선홍 전 프랑크푸르트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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