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을 점령한 작은 사람들
도로명 위의 작은 인형을 본 적 있으신가요?
베를린을 다니다 보면 드문드문 도로명 플레이트 위에 놓여있는 작은 인형을 발견할 수 있다.
도로명 플레이트를 수시로 보고, 발음공부 겸 소리내어 읽고 다녔지만 활자를 읽느라 주위의 것들은 볼 겨를도 없었는데 어느 날 남자친구가 방금 읽은 도로명에 뭐 특별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렇게 듣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이 인형을 발견했다.
이게 바로 그 인형인데 Street Yogi 또는 Korkmännchen이라고도 불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코르크로 만들어졌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이 작은 코르크맨은 요제프 푸스(Josef Foos)라는 요가 강사가 어느 날 신문에 난 영국 작가 슬린카츄(Slinkachu)의 Little People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에 시작되어 베를린에서는 수십회 이상 기사화 됬지만 한국에서는 코르크맨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를린에 사는, 베를린에 방문할 누군가를 위해 글을 남긴다.
‘대도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Little People 프로젝트의 취지가 마음에 들었던 요제프는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고, 거리에서 아주 작은 인형을 발견했을 때만큼은 작은 기쁨과 긍정적인 마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돈은 없고,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싶진 않아서 생각해낸 재료가 코르크.
*Little People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Street Yogi라는 이름처럼 처음에는 요가 아사나 동작을 하는 코르크맨으로 만들었는데 점점 축구, 등산 등 다양한 스포츠로 영역을 넓혔다. 작고 간단해 보이지만 나무로 관절까지 표현해서 만드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초기 작품과 가장 최근의 작품을 보면 컬러풀한 색감이나 다양한 얼굴 표정이 생겨났는데 사실 그렇게 디테일하지 않아서 더욱 친근감이 든다. 가끔은 다섯살 내 조카가 만들어서 올려놓은 것 같다. 플라스틱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화려한 색깔의 리틀 피플과 비교하면 Street Yogi는 가난한 요가강사에게서 출발한 그 태생과 소박하고 투박한 모습이 참 베를린스럽다.
이 작은 물체의 위치를 모아놓은 지도도 있다. 그렇지만 찾아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비바람이나 호기심 많은 새를 만나 자주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일은 없을 것 같은 코르크맨이 내일은 그대로 있고, 몇일은 끄덕 없을 것 같은 코르크맨은 갑자기 사라진다.
요제프는 예측불가한 Street Yogi의 존재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베를린 사람들에게 계속 웃음을 주기 위해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요새는 코르크가 아닌 떨어진 나뭇잎을 활용한다.
나도 작품의 짧은 수명이 주는 의미와 즐거움이 더 크리라 믿는다. 그래서 코르크맨을 발견하면 반갑고, 운이 좋은 날처럼 느껴진다. 요제프가 의도한 것이 이런 소소한 행복 아닐까?
최근 활동을 찾다 보니 아쉽게도 요제프의 요가 스튜디오는 올 여름 문을 닫았다. 이유는 쓰여있지 않았지만 락다운으로 인한 경영악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길었던 코로나의 방해 속에서도 베를린 곳곳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자라나고 있기를. 그리고 2021년에는 새로운 코르크맨 형제들과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 클레어/ 에세이스트
잘 다니던 마케팅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와서 사부작사부작 기획하고 글을 씁니다. 취미는 슈퍼마켓 신상구경, 특기는 생동감 있는 리액션 입니다. - 본 글은 클레어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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