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엄마가 된 나의 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엄마라는 존재들은 언제나 내 마음을 울려버려. 언니의 작은 아가를 향한 소중한 그 마음 또한 나는 참 아름다워 마음이 뜨거워진다.
맞아. 우리 참 꿈 많은 소녀들이었지. 언니가 이렇게나 빨리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될 줄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줄은 그땐 몰랐어.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왔던 촌년이던 내가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눈 떠보니 나는 독일에 살고 있고 앞으로의 살아갈 곳을 고민하는 나그네가 되어있네.
이번 여름, 2년 만에 나는 한국에 왔어.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 자주 울던 지난날들은 지났지만 한국에 간다는 그 생각에 나는 설레어 잠이 오지 않더라. 나를 맞아줄 둥근 눈의 아빠와 오랜 시간 기다려준 연인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컸어.
그런데 2년이라는 시간은 꽤나 길고 무서운 시간이었어. 사회가 변화고, 삶이 변하며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그 시간의 깊이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했던 거야.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는 아주 많이 변해있었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맞이해야만 했어.
아빠의 재혼과 부녀 관계의 위기
아빠가 재혼을 하신 것은 지금도 기뻐. 딸 하나만 바라보며 남은 여생을 살지 않기를, 당신의 행복을 찾길 누구보다 기도했던 나였기에. 그런데 언니,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아빠는 다시 결혼이란 선택을 하고 나로부터 떨어진 저 멀리 어디엔가 새로운 가족이란 섬에 서있는 것 같아. 재정적인 문제로 다퉜고, 어느 순간 ‘독립’이라는 단어에 대해 자주 언급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2년 만에 독일에서 온 딸을 봐도 예전 같은 반가움이 얼굴에 비치지 않더라.
우리가 다시 만난 저녁 나는 가족들과 치킨을 시켜먹었어. 그리고 아빠는 닭다리를 집어 가장 먼저 새어머니에게 주고는 다음으로 그녀의 아들이자 나의 새로운 남동생에게 주더라. 그리고 나는 홀로 치킨을 집어 먹었어. 참 유치하게도 나는 그날 밤새 눈물을 흘렸어. 그저 뉴스를 보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 세 사람이, 따스한 포옹 한번, 질문 하나 주지 않던 아빠가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던 그날 밤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우리 가족은 평화로워 보였어.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독일 삶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그저 원래 있던 사람처럼 나를 대했는데 나는 그런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어.
새어머니와의 대화, 침묵
새어머니에게 일방적인 꾸지람을 듣게 된 어느 날 밤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가 너에게만 관심을 줄 수 없다고. 너와 아빠와의 관계는 변했고 이제 아빠의 옆자리엔 다른 사람이 있기에 나이답게 독립을 하라고. 대화를 하자고 나를 불렀던 그녀는 30분 동안 내게 당신이 느낀 불만과 내가 고쳐야 할 점들을 이야기했어. 그중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나의 나이를 강조하며 아빠와의 관계에서 정신적인 독립을 강요했던 점이야.
'독립을 강요함과 동시에 본인의 입맛에 맞는 딸이 되길 바라는 것'
외로웠어.
나는 새어머니께 불만이 없어. 그저 그녀의 속도에 맞춰 내가 당신께 가까워지길 바라는 그 마음이 부담스러웠고 아빠 당신이 내게 독립을 요구하며 거리를 두는 그 모습이 슬펐을 뿐이야. 슬픔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상실이겠지. 나는 아빠 당신을 정말로 잃었는지 잃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잃었어. 이 지독한 상실감이 나를 외롭게 만든 거야.
정신적 독립에 대하여
정신적인 독립이란 무엇일까. 내겐 아빠밖에 없었는데 아빠와의 거리를 두라니 정말 혼란스러운 요구가 아닐 수 없었어. ‘보통의 거리를 가진 건강한 부녀관계’는 무엇일까. 이혼 후 혼자였던 아빠와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란 딸이 아빠를 의지하며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자연스러운 우정과 가족애. 이것은 내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삶의 자랑 같은 것이었어.
아빠와 새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아빠 곁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되는걸. 하지만 친구를 상실한 마음의 치유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들이 말하는 홀로 서기, 즉 정신적 독립은 ‘밀어냄’과 ‘강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20대이지만 여전히 당신의 자녀이고, 세상의 시림 속에 따스한 내 편 한 사람을 두고 싶은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안기고 싶은 그런 어린이이고 싶어.
딸이기 때문에 당신을 끌어 안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이 말하는 ‘정신적 독립’을 해보려 해. 딸로서 할 도리는 다 하되, 더 이상 아빠를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 첫걸음이 될 것 같아.
이혼과 사업 실패라는 모진 세상살이 가운데 아빠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누군가와 이혼을 경험했던 새어머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거잖아. 부모로서 세상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50대의 후반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는 그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서러움과 외로움이 밀려드는 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눈물 끝에 찾아오는 짜릿한 우주의 위로가 내게 큰 힘이 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밤에도 나는 그 우주가 주는 위로 덕분에 부모님을 위해 그 자리에 있기로 결심했어. 위로받고 싶은 당신들에게 그저 힘이 되는 딸이 되어주자는 이 다짐을 하기 위해 어쩌면 내가 이번 여름 한국에 온 이유가 아닐까?
혼자만의 공간, 어른 아이
이주를 꼬박 눈물로 지새우고 내린 나의 결론은 바로 사랑이야. 사랑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잖아. 욕심 많던 외동딸 소녀의 삶의 목표가 언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 독일에서 만난 만남들과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나날들이 나를,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것 같아.
하지만 이런 어른 아이 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혼자만의 공간이야. 가족과 지내는 것에 더 이상 큰 어려움은 없지만 나는 확실히 깨달았어. 나만의 공간 속에서 나는 가장 나답고, 자유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더욱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면 살게 될 스스로의 공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볼 거야.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 관계 속에 얻은 상처와 눈물로 인해 나는 내가 이루고 픈 삶의 윤곽을 조금씩 그려나가는 중이야. 경제적인 독립과 더불어 부모님이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는 것.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마음의 소망과 함께 최선을 다한다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가족의 품에서 독일을 그리워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남은 시간 후회 없이 genießen ( 독일어로 즐기다라는 뜻) 하기로 했어.
선선한 바람 부는 가을이 나는 참 좋지만, 우리의 추억이 담긴 여름의 계절이 다 지나가기 전에 언니를 찾아갈게.
언제나 보고싶어!
- 작가: 물결 / 예술가
독일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예술심리치료사. 재미있게 사는 것이 좋은 사람.
- 본 글은 물결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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