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초반 침묵하던 독일도 난민 수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알리시아가 고백합니다. 자기는 요즘 그런 독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요. 엄마가 말합니다. 한국에도 우크라이나에 가서 같이 싸워주고 싶다는 분들이 많대. 알리시아의 눈이 커집니다. 정말이야? 그건 너무.. 감동이야!
그리운 샘.
프랑크푸르트는 잘 다녀왔습니다. 투표도 잘했고요. 그날은 날씨가 화창하고 포근했어요. 봄날의 소풍날 같았답니다. 뮌헨 중앙역에서 새벽 6시에 기차를 탔어요. 뮌헨에서 알게 된 H언니와 함께요. H언니도 저도 독일의 기차를 사랑했어요. 독일의 많은 것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기차가 단연 최고인 건 쾌적하고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Regional을 타면 싸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뮌헨과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는 6시간 동안 뉘른베르크에서 한 번, 뷔르츠부르크에서 또 한 번 갈아타는 것도 좋았답니다. 이렇게 또 쉬게 해주네, 하면서요. (단, 갈아타는 시간이 넉넉하고 기차가 연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독일 기차는 연착을 밥 먹듯이 하고, 플랫폼도 잘 바뀌고, 심지어 기차 행선지가 갑자기 바뀌어 중간에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 돌발 사태도 생기고요. 돌아올 때 우리가 그랬답니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는 좋은 기억이 많아요.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친절하던지요. 신속과 정확은 덤이고요. 부동산 관련 서류가 필요해서 혼자서 한 번, 작년에 언니가 왔을 때도 가 본 적이 있거든요. 코로나 전에는 미리 전화를 못하고 갔는데 제가 필요한 서류를 꼼꼼하게 챙겨주더군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서류까지 필요할 거라며 발급해 주었고요. 나중에 보니 그분 말이 맞았어요. 언니와 갔을 때는 코로나 때라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갔지요. 언니는 외국 영사관에서 이런 친절함을 기대하지 못했다며 감동 또 감동했어요. 언니가 급히 한국으로 돌아간 작년 추석 때는 자가격리 면제서를 이메일로 부탁하자 바로 보내주더라고요. 독일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건 한국의 이런 서비스입니다. 우체국이나 택배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빠르죠, 미리 연락 주죠, 못 받으면 발 벗고 찾아주죠. 여기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택배 일을 하시는 분들의 살인적인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고요..)
독일 기차에는 2인석과 4인석이 있지요. H언니와 저는 4인석에 앉았어요.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차창으로는 봄빛이 비쳐 들고, 지나치는 마을 풍경은 한가했어요. 들판에는 곧 찾아올 봄을 준비하는 고요한 소란이 느껴졌고요. 언니도 저도 오랜만의 기차 여행이라 무척 들떴답니다. 저는 과일을, 언니는 삶은 계란을 준비했죠. 삶은 계란이 여행의 완결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한국의 대선과 각자의 지나온 날들, 언니가 하시는 뮌헨의 일 얘기를 들으며 열두 시간이 지루할 새도 없이 지나갔어요. 영사관에 도착하자 한국의 투표소에 온 것처럼 일사천리로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답니다. 1~2시간을 각오했는데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거기서 몇몇 반가운 얼굴도 만났어요. 뮌헨에서 오신 분들요. 뮌헨 한인회 회장님은 갓 만든 찹쌀떡을 차에 싣고 와서 나눠주셨어요. 마치 수능을 끝내고 나온 기분이랄까요. 독일의 투표 열기가 이 정도였답니다. 남는 시간은 어쩐다?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자장면을 먹고 왔어요. 언니의 한 마디 덕분에요. 프랑크푸르트에 왔으면 자장면은 먹고 가야지! 프랑크푸르트가 자장면으로 유명한지 저만 몰랐네요. 자장면에 진심인 다른 가족도 같이 갔지요. 언니가 자장면을 쏘았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장면은 얻어먹는 자장면! 식당 테이블이 아니라 길가의 돌 위에 앉아 햇볕 한 입과 바람 한 입을 단무지 위아래에 끼워서 먹는 자장면이랍니다!
목요일 저녁에는 클레멘스와 알리시아와 저녁 산책을 갔어요. 오랜만에 시내로 나갔죠. 3.1절이 클레멘스 생일이었는데 선물을 못 샀거든요. 알리시아와 함께 클레멘스에게 줄 지갑을 돌아봤지만 고르질 못했어요. 오후 다섯 시쯤 이자르 강을 따라 다리를 건너 시내로 갔어요. 해는 지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걷기에 좋았어요. 3월이 왔지만 아직 롱 패딩으로 나갔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날씨가 쌀쌀해서요. 갤러리아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지갑을 고른 후 후겐두벨 서점에서 알리시아도 책 두 권 겟. 저녁은 빅투알리엔 마켓 생선 가게 Nordsee에서 먹었어요. 저는 생선 수프를 둘은 생선 튀김에 감자를 곁들여 먹었답니다. 맛있고 가격도 저렴했어요. 뮌헨은 외식비가 비싼 대신 장바구니 물가가 싸요. 과일, 채소, 치즈와 햄과 살라미, 파스타와 고기도 저렴하지요. 외식비만 비싸요. 점심은 1인당 10유로, 저녁은 20 유로면 싼 편이에요. 음료와 팁 포함요. Nordsee에서는 음료 포함 3인분에 35유로였고요.
저녁을 먹고 나니 저녁 7시. 오랜만의 외출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온 가족이 외식을 할 수 있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 선물을 살 수 있고, 주말이 코 앞이라 평일 저녁이 주는 평온함도 더해져 마음이 더없이 즐거웠죠. 봄도 멀지 않았구나.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어 행복하구나.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생각했어요. 자기 나라를 떠나 집도 없이 전쟁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남자와 여자들, 노인과 아이들을요. 매일 저녁 독일의 시어머니 두 분은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하세요. 친어머니 카타리나는 어릴 때 전쟁을 경험하셔서인지 화를 내세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요. 어머니는 집으로 일하러 오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통해 성금을 내시고, 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난민들을 본인들 집에 묵게 할 거라는 말에 놀라워하셨어요. 우크라이나와 이웃한 나라들도 국경을 활짝 열었답니다. 특히 폴란드가 적극적인 거 같아요. 난민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도움을 줄 거래요. 알리시아가 말했어요. 독일도 곧 그렇게 할 거라고요. 라디오에서 들었대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고, 독일 시민들에게 우크라이나 가족을 집에 머물게 해 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대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이런 것이 진정한 휴머니즘 아닌가 하고요. 그 밤 알리시아가 물었어요. 엄마, 우리도 우크라이나 가족 받을까. 우리 집에도 방이 하나 있잖아. 그럼요, 있고 말고요. 알리시아 앞에서 저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답니다. 그 마음이 곱고 소중해서요. 아이들이 우리의 스승이고 거울입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클레멘스에게 알리시아 얘기를 전했답니다. 주말에 같이 얘기해 보자네요. 예상했던 일인지 흐뭇한 미소도 잃지 않았어요.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즉흥적으로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요.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누구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지나친 고민 역시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전쟁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에겐 따뜻한 집과 음식이 필요하고요. 그 아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미래이자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니까요. 주말에만 받아보는 남독일 최대 일간지 <쥐트 도이치 짜이퉁> 금요일자 1면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독일 청년들의 데모 사진과 폴란드 군인의 사진이 실렸어요. 폴란드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아이에게 인형을 건네는 군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선량함과 관대함을 봅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비겁하게 숨지 않고 결연히 맞서는 지도자와 영부인, 자신의 나라와 가족을 위해 기꺼이 총을 드는 시민들이 있는 한 우크라이나는 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대선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네요.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누가 도망치지 않을 후보인가. 누가 시민들과 연대하며 끝까지 함께 갈 후보인가를요.
샘.
금요일에 알리시아는 친구 한나와 애완 쥐들의 생일 쿠키를 구웠답니다. 둘이 장을 보고, 쿠키를 굽고, 초를 켜고, 쥐 얼굴이 그려진 풍선을 쥐들 집 위에 놓았어요. 풍선이 왜 네 개냐고 했더니 하나는 자기래요. 며칠 전에는 먼저 떠난 골디 무덤가에 꽃씨도 뿌려주었답니다. 오늘은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물도 주고 왔나 봐요. 한나가 가고 알리시아가 말했어요. 한나네도 우크라이나 가족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요. 이런 착한 사람들이라니요. 이런 가족이 우리 알리시아 친구라니요. 알리시아가 말했어요. 엄마, 우리도 그냥 하자.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난다는 건 너무 신기한 일이야.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문화와 친해지는 거잖아. 너무 멋지지 않아? 듣고 보니 진짜로 그럴 것도 같았답니다.
그날 저녁 레겐스부르크 어머니한테 새소식을 들었어요. 레겐스부르크는 작은 호텔들을 난민 숙소로 이용하기로 했대요. 제가 너무 훌륭하다 했더니 알리시아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하네요. 호텔은 집이 아니란 뜻이겠죠. 제가 말했어요. 난민촌이 어떤지 네가 안다면 호텔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알게 될 거야. 구글로 난민촌을 검색해서 보여주니 한참을 말이 없네요. 알리시아는 우리 부엌이 너무 좁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제가 말했죠. 집이 작고 좁아도 괜찮다고요. 그리고 우리 집은 작지 않다고요. 서로 돕고 위하는 마음이면 된다고요. 밥상에 밥 숟가락 몇 개 더 놓고 나눠먹으면 된다고요. 아이들은 금방 이해합니다. 자기가 학교에 가고 없는 동안 심심할 친구에게 자기 방에 있는 걸 다 공유하겠대요. 그런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샘.
작년에 제가 아프고 나서 제일 후회되는 게 뭐였는지 아세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구나. 너무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좀 더 나눌 걸, 시간도 돈도 마음도. 그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안 좋았을 때라 아마도 그건 제 진심이었을 거예요. 양심의 소리 같은 거 있잖아요. 이상하게도 더 하고 싶은 일은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미련이 남는 일도 없었고요. 다시 산다면 더 나누어야지, 그 생각에 가장 놀란 것도 제 자신이었답니다.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더 많이 사랑하지 않은 거라 하잖아요. 맞는 말 같아요. 그래서 큰 고민은 안 해요. 우크라이나 가족과 만나는 일 말이에요. 만약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면요. 알리시아도 클레멘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우리와 지내는 동안은 손님이 아니라 가족이라 생각하려고요. 탱크가 고장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탱크 안에 숨어 있던 러시아 군인에게 빵과 차를 건네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고국의 어머니와 통화하다 울음을 터뜨린 러시아 병사를 생각합니다. 애처롭습니다. 알리시아도 이 얘기를 듣고 눈이 빨개졌어요. 전쟁 앞에서 우리는 형제고 자매고 가족입니다. 인류애. 이보다 더 맞춤한 단어가 이 밤 저는 생각나지 않네요. 지금 우리가 꼭 기억할 단어입니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뮌헨의 마리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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