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의 나라는 프랑스인 줄 알았다. 미디어에서도 그랬고 고등학교 정치 경제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있던 걸로 기억한다. 프랑스에서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겪어보니 독일이야 말로 파업의 나라. 우체국, 철도, 시내 대중교통, 항공사, 아마존 물류센터…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파업이 끊이질 않는다. 파업이 있으면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의 빨리빨리에 적응되어 있는 나에게는 정상적인 상황이든 파업으로 인해 차질이 생긴 상황이든 느리고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 그래서일까? 파업을 한다고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거 참! 다 같이 잘 먹고 잘 삽시다!’ 라며 노측인지 사측인지 편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응원을 마음속으로 할 뿐이었다. 그분들이 파업을 한다고 할 때 까지는…
하교한 큰 아이가 유난히 즐거운 표정으로 알림장에 붙어있는 가정 통신문을 흔들어 보인다.
“엄마, 선생님들이 반슈트라이크(Warnstreik)한대!”
반슈트라이트는 경고성 파업. 학교 안내장을 읽어봤더니, 교사들의 파업 참여로 내일과 모레 이틀에 걸쳐 1, 2교시 수업을 하지 않겠단다. 비정규직 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단체 행동이니 부디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고!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가 교육 공무원로서의 지위와 고용환경이 안정적인 한국과 달리 독일은 비정규직 교사의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그 여파로 특히 초등교사는 인기는커녕 기피 직종이다시피 되어 교사 및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도 종종 들었다. 결국 어린아이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걱정스러운 상황인지라 그 이해와 협조, 백번이고 하고 싶다. 내 아이 둘 보는 것도 가끔은 벅찬데, 스물댓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고충은 오죽할까.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보다 안정적인 고용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실 수 있다면 미약한 나의 목소리라도 보태드리고 싶다. 그런데 당장 내일이라뇨? 이건 너무하잖아요… 이 땅에서 유일한 육아 동지인 남편은 2박 3일 학회 참석으로 어제부터 독일에 있지도 않다. 하필이면 꼭 이럴 때에… 지금까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파업의 여파가 내 일이 된 순간, 막막해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당장 내일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본다.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어학원을 빠져야 할 텐데. 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독일어 시험 때문에 이틀 연속으로 열 시간 가까운 수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2주도 아니고, 겨우 이틀 동안 두 시간씩일 뿐인데… SOS를 외쳐댈 시댁도 없고, 애교 섞인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할 친정 찬스는 꿈에서나 쓸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 나 홀로 떠 있는 기분이다. 어두운 밤 가냘픈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작은 외톨이 섬같이. 처량한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밤이다.
다음날 아침, 기어코 해는 밝았고 철부지 아이는 학교에 늦게 간다며 신이 났다. 오늘 내 계획은 이렇다. 어학원을 통째로 결석할 수는 없으니 아이랑 같이 1-2 교시 수업을 듣고, 3-4교시에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니 빠지기로.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수업 시작 전에 선생님께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어학원.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용기를 내 본다. ‘안된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숙제만이라도 받아가면 그게 어디야. 평소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하신 분이니까 아마도 아이랑 같이 수업 듣는 건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그래도 속상해하지 말아야지…’ 일등으로 도착한 교실. 문가에 서서 쭈뼛쭈뼛 겨우 입을 떼려는 순간, 어학원 선생님은 나와 아이를 보시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다가오셨다. 혹시 나가라고 내쫓나 싶어 움찔했는데… 선생님은 아이 손을 덥석 잡고 우리를 교실 안으로 끌어들이셨다.
“그 학교도 파업이구나? 아이 맡길 데도 없을 텐데… 어서 들어와.”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님도 내 아이와 같은 학년의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라는 사실을. 자신은 친정엄마의 도움 덕분에 수업하러 나올 수 있지만,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는 너는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냐는 따뜻한 위로의 말에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마음 편히 두 시간 동안 어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는 선생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다 칠판을 지우고,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나름 조수 노릇을 톡톡히 했고. 아이 등교를 위해 교실을 나서는 나에게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씀해주셨다.
“ 내일도 아이 맡길 데가 없으면 걱정 말고 데려와요. 정말로.”
내 어깨를 다독이는 선생님의 손을 통해 진하게 느꼈다. 공식적인 노조는 없지만 학부모 소속으로서 가질 수 있는 뜨거운 연대감과 동지애를.
3교시 등교를 위해 아이를 데려다주다 학교 앞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 엄마 바바라. 여차저차 하여 아이와 함께 어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다 왔다고 이야기했더니, 펄쩍 뛴다.
“말을 하지 그랬어. 내일은 조슈아 우리 집으로 보내. 내가 우리 애들이랑 같이 데리고 있다 등교시킬게 ”
같은 독일이어도 시댁은 북쪽 끝 뤼벡(LÜBECK), 친정은 남쪽 끝 자르브뤼켄(SAARBRÜCKEN)에 있어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한다. 1학년, 2학년, 4학년 이렇게 자녀가 셋이나 되다 보니 이틀 연속 오전 반차를 냈다고. 아이들이 셋이거나 넷이거나 별 차이 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 보내란다. 그리고 너는 가서 열심히 독일어 공부해서 시험에 꼭 붙으라는 응원까지 해주는데 눈물이 핑. 이렇게 고마울 수가. 도움받을 데 하나 없다고 생각한 외톨이 섬에 또 한 번 구조의 손길이 닿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바바라 덕분에 나는 걱정 없이 하루치 어학원 수업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아이는 친구와 함께 선생님 파업을 만끽! 그렇게 날벼락같았던 파업을 무사히 버텨냈다.
“선생님들 또 파업했으면 좋겠다. 언제 또 하지?”
저녁을 먹다 말고 해맑은 표정으로 어마 무시한 소리를 하는 아이. 엄마랑 같이 어학원에 가서 선생님 도우미를 한 것도 재미있었고, 아침부터 친구네 집에 놀라간 것도 좋았다고. 선생님의 파업을 재미난 이벤트쯤으로 생각하는 아이를 재우며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든다. 이틀 전만 해도 난 독일이라는 망망대해에 외따로 떠있는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운 상황에 처해보니 내게 작은 나룻배를 내어주는 이웃섬이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400년 전 영국 시인 존 던 (John Donne)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어쩌면 혼자라고 느끼는 우리 모두는 망망대해가 아니라 연안에 흩어져 있는 많은 섬들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도움의 손길을 실은 나룻배 한두 척 정도는 띄우고 맞이할 수 있는. 힘든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나룻배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웃섬 삼은 덕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리라. 결국 경고성 파업으로 나의 이틀이 고단해지긴 했지만. 나룻배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면 언젠가 작은 섬들 사이사이에 다리 하나 둘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여기서 덜 외롭게 지낼 수 있겠지.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받아 마땅한 권리를 누리며 새싹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할 수 있고. 차오르는 희망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밤이다. 이따가 늦은 밤 남편이 학회에서 돌아오면 지난 이틀간의 무용담을 안주삼아 함께 맥주 한 잔 해야겠다. 건배는 함께하는 작은 섬들을 위하여.
- 작가: 오롱
<동독에서 일주일을> 공동저자. 한국에 나고 자람. 스위스, 미국, 독일을 거쳐 이제 막 영국에 정착. 언어, 문화, 정체성이 뒤섞인 콩가루 집안을 지키는 씩씩한 엄마. - 본 글은 오롱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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