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이 다 엽서 같다 진짜, 완전 멋짐ㅠ ‘
‘ 베를린에 있는 동안 여행도 많이 다니지? 부럽다 정말.’
나의 SNS 계정의 피드마다 남겨지는 댓글의 분위기는 보통 이러했다. 코로나라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사는 누군가에겐 베를린에 사는 삶 자체가 꽤나 부러운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장소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살이 5년 차까지는 내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나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베를린에 살면서 방문해 본 독일 내 도시들은 손에 꼽히고, 비행기만 타면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여전히 자체 버킷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 것이 전부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처음 베를린에 발을 딛었을 때 나와 남편은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젊은 아시아인’ 내지는 ‘외국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행히 베를린은 워낙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어 일상에서 영어가 통하는 곳도 있고 남편도 회사에서는 영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 일상에서는 독일어로만 소통이 가능했으므로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알게 모르게 굉장한 제약이 따랐다. 태어나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단어를 공부하듯 장을 보거나,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는 안내 방송과 함께 어려운 정류장 이름을 수십 번 되뇌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청이나 은행 등 각 관공서에서 제공하는 어마 무시한 서류들을 독일어로 읽고 독일어로 작성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은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난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던 눈보라가 몰아쳤던 1월엔, 사람들이 어찌나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던지. 해가 짧아지는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다는 사실을 훗날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독일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했던 나는, 그해 겨울 어디서 무얼 하든 꼭 한 번씩은 혼쭐나는(?) 경험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계산대에서 거스름돈을 적게 받아도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한 채 되려 큰소리를 듣기도 했고, 별것도 아닌 일을 인종 차별로 오해해 혼자 끙끙 앓은 적도 있었다. 한국에 사는 동안엔 전혀 몰랐던, 외국인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들을 종종 받으며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혼나는 기분으로 살아갔다. 독일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을 때면 사람들이 두려워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언어를 조금씩 습득해나가자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가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방식, 팁 문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초대받을 때의 예의 등 한국과는 또 다른 그들의 문화를 배워나가는 과정에도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가령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 Gesundheit!/ 건강하세요!(게준트하이트!)’라고 응대하거나 상점이나 레스토랑을 나설 때마다 ‘Tschüß! / 안녕히 계세요! (츄쓰!)’라고 크게 외치는 문화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독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완벽하게 따라 할 필요도 없었고, 모르고 실수하더라고 대부분 이해해주는 분위기였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충분히 고상하며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독일인들에게 어필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들의 기준에 맞는 행동과 말을 해야 만한다는, 밉보이지 않겠다는 지나친 긴장 속에 매일을 살았던 듯하다.
시간이 있으니 돈이 없네.
무엇엔가 얽매이는 것이 없으니 선물처럼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어학원을 다니며 열정을 쏟았던 시기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의 시기를 제외하면 꽤 많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남편에게도 회사로부터 1년에 30일이라는 꽤나 긴 휴가기간이 주어졌다. 물론 바쁜 시기만 아니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언제든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대로 사용했냐고 자문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오’
넉넉한 시간이 생기면 말 그대로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줄 알았다.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여유를 부린다든지, 혹은 시크한 옷을 입고 베를린의 거리를 거닐며 멋들어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든지, 긴 휴가기간 동안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어디로든 훌쩍 떠나 남부러운 여행을 한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생기자 아쉽게도 그 시간들을 마음껏 충족시킬 만큼의 돈이 없었다. 한국보다는 저렴한 물가의 베를린이지만, 남편의 월급은 한정적이었고, 심지어 박사과정 중에는 기본 월급보다 한참 적은 액수를 받아야만 했기에 사실상 재정적으로 여유를 누리진 못했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와 기본 생활비들을 제외하고 나면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베를린에서의 취업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독일어로 일할 자신이 없었고 그 모든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절약’이었다.
카푸치노 한잔을 사 먹지 않으면 호밀빵 한 봉지를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주변을 돌보는 비용에 대해서 박한 것은 아니었다. 친한 이들의 경조사에 지출하는 비용은 이상하게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외식을 할 여유가 없었고, 가격대가 있는 물건이나 옷을 섣불리 사기는 힘들었다. 또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다녀오다 보니 비행기 값이며 부대비용으로 한 번에 많은 지출이 생겼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서는 조금 더 아끼며 살자 라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감사하게도 다달이 아이를 위한 정부 지원금이 나오기도 하고, 평소 보험비를 많이 내는 대신 병원비를 추가로 내는 일은 거의 없어서 과소비를 조금만 줄여도 살아가기엔 지장은 없었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나아진 재정 덕에 가끔 외식도 하고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 마시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빠진 남편은 여유를 부릴 시간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국에 비하면 일하기 참 좋은 환경이지만, 이상적인 워라벨을 갖추기는 어디서든 쉽지 않은 모양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문득, 온 우주에 덜렁 혼자만 남겨져 있는 것 같은 고독함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히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항상 내 곁에 있고, 마음 맞고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그렇게 공허하고 외로울 수가 없다. 나만의 시간을 얻었으나 그 시간 속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외로움만 남을 때가 참 많았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의 처지와 같은 사람은 흔치 않았다. 대부분 각자의 꿈과 목적을 향해 베를린에 왔고 이곳에서 어떤 목표를 이뤘거나 혹은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애초에 아무런 목적과 꿈 없이 베를린 살이를 시작한 나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그놈의 자격지심. 초라한 나를 바라보게 되는 날이면 그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그룹 내에서의 치열한 전투 같은 경쟁으로 인해 낙오되고 쓰러지며 힘들어했었다면, 베를린의 한인 사회는 또 다른 의미로 쉽지가 않았다. 좁게는 그들과 전공이나 분야, 상황이 달랐고 넓게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체수가 적었다. 함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좁았으며 한편으로는 너무 다른 모습에 이질감마저 들었다. 속시원히 나의 심정을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설사 이야기 한들 공감을 이끌어내거나 깊은 위로를 받기엔 늘 한계가 따랐다. 애초에 이런 복잡한 감정을 독일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독일 친구들에게는 감히 이런 류의 이야기를 꺼내지조차 못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오후 4시만 되면 깜깜 해지는 겨울이 오면,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온몸이 늘어지고 우울해지기 십상이라 비타민D는 무조건 끼고 살아야 하는 겨우살이 필수품이 되었다.
와 여기 너무 좋다!
한국에 사는 지인들의 SNS를 구경하다 보면 한국에 정말 멋지고 예쁜 곳이 많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기 너무 좋아 보인다. 나도 가고 싶어!’ 식의 댓글을 남기고, 어김없이 ‘네가 더 좋은데 살고 있잖아.’라는 대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댓글로라도 남겨보는 나의 마음은 늘 진심이었다.
삶을 여행처럼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뿐 실제로는 일상에 치여 매일을 살아내기에 바쁘지 않은가? 세상 어디에 살든 꿈결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라 장담한다. 사람 사는데 다 똑같다. 삶은 삶이고 여행은 여행이다. 언어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두 단어가 아닌가? 현재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 장소나 생활권, 반복되는 일상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여행이 된다. 참 별게 없다.
베를린에 산다고 해서 인생의 낭만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슬프게도 집 근처에 있는 역사 깊고 아름다운 성은 그저 오래된 건물일 뿐이고, 그를 둘러싼 잘 가꿔진 정원은 넓은 산책로일 뿐이다. 가끔 날씨가 좋은 날에 성 주변을 거닐다 문득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는, 사실은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왕 주어진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변화와 자극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뒤흔들만한 대단한 변화와 자극일 필요는 없다. 평소 가보지 않았던 거리로 발걸음을 옮겨보거나 하고 싶었던 취미들에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 정도로도 반복되는 권태로움에서 벗어나는데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우연히, 인터넷 검색에도 잘 나오지 않는 맛집이나 예쁜 카페, 작은 서점 혹은 흥미로운 상점을 발견하거나 몇십 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능력을 알아채는 기회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순식간에 황홀한 여행으로 바뀔 수는 없겠지만 적어로 ‘오늘의 삶’을 조금은 더 기운차게 살아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임을 감히 또 간절히 믿어본다.
-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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