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인터뷰할까?”
아이와의 다섯 번째 인터뷰는 처음으로 인터뷰이의 역제안으로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네 번째 인터뷰를 진행한 지 어느새 6개월 이상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이 스스로 인터뷰를 할 때쯤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바빴던 탓에 늦어진 감이 있었지만, 실은 나 역시 인터뷰 타이밍이 되었다고 느끼던 시점이었다. 독일살이를 끝내고 귀국한 지 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가 슬슬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간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년이면 13살이다.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은 ‘슬슬 사춘기 올 때가 되었다’ 거나 ‘조만간 공포의 중2가 시작된다’ 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며 ‘얼마 남지 않은 (달콤한) 시기를 즐기라’는 식으로 귀결하곤 했는데 아이의 성장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감지하고 바라봐주는 내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기쁨일 뿐이었다. 내 아이의 내적 외적 성장에 기여하고 지켜보고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이 부모로서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더불어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커나갈지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나는 순간순간 느끼는 아이의 성장이 섭섭하다거나 혹은 곧 닥칠지 모를 사춘기에 대한 걱정을 불러오기는커녕 대견하고 고마웠다.
해서 이번 인터뷰의 키워드는 ‘성장’이다.
Q. 한국에 돌아온 지 거의 1년이 되었어. 독일에서 지낼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뭐야?
“학교가 달라졌고 주변 환경도 달라졌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건도 달라졌고,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달라졌고.”
Q. 그 변화들이 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어?
“처음엔 긴장도 많이 됐지만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졌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 예전 학교에 다닐 때처럼 친구가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건 단점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등 친척들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Q. 힘들 거라는 짐작을 미리 했기 때문에 더 괜찮았던 걸까?
“음,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걱정을 덜 하는 편인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재밌는 것,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든.”
Q. 몇 달 전에는 5학년 과정도 시작됐잖아. 초등 과정이 끝나고 중등 과정이 시작된 건데 그 변화가 너에게는 어떻게 느껴져?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
“스트레스까지는 아닌데, 솔직히 숙제가 훨씬 많아졌고 해야 할 것도 많아졌지. 수업만 하더라도 전에는 예를 들어 80%만 집중을 해도 이해가 됐다면 지금은 모든 수업이 훨씬 더 큰 집중력을 요구해. 그런데 막상 보면 또 그렇게 큰 변화는 아닌 것 같아. 어느 날 갑자기 확 달라진 게 아니라 천천히 달라지는 거니까, 그냥 학교 생활의 연장선인 거지.”
Q. 엄마가 느끼기에는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네가 몸도 마음도 엄청나게 성장한 것 같아. 넌 어때?
“나도 그렇게 느껴. 키도 크고 몸무게도 늘었고. 얼굴도 달라진 것 같은데, 내가 예상했던 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자연스러운 변화지.
그리고 생각하는 것도 성장한 것 같아. 전에는 하나를 보면 보이는 그대로 판단했는데 지금은 그 판단에 확신을 갖기 위해 생각을 더 많이, 깊게 하는 편이야.
상징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전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땅 표면만 긁었다면 지금은 땅을 깊이 파보면서까지 찾으려고 하게 된 거지.”
Q. 음,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건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코딩을 할 때 전에는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지점에서만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전체 코드 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면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식이야. 당장 오류가 생겼다고 해도 바로 그 부분이 아니라, 전혀 다른 데서 생긴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거든. 어디서 생긴 문제가 어떻게 파급 효과를 발생시켜서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인지… 그러니까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할까. 아니다, 아직 나는 숲을 보는 것까진 아닌 것 같고 나뭇잎만 보지 않고 나무를 보게 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Q. 대답하는 걸 보니 정말로 성장했다는 게 느껴지네.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몸과 마음을 나무라고 생각해봐. 씨앗이 하루아침에 나무가 되는 건 아니잖아.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새싹이 트고 많은 과정을 거쳐서 나무가 되어가잖아. 몸도 마음도 그런 과정으로 성장해가는 것 같아. 나는 아직 어린 나무 정도?”
Q.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준비를 해야겠지. 아기일 때, 어린이일 때는 어른들이 많은 걸 해주잖아. 성장하는 건 점점 혼자 많은 걸 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독립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도 지금까지는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준비도 안됐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마음과 몸이 자라면서 점점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 뭐든지 혼자 해보고 싶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
Q. 성장하는 과정에는 주변의 사람들도 많은 영향을 끼쳐. 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니?
“친구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아. 그런데 자극이란 건 기브 앤 테이크인 것 같아. 어떤 친구의 좋은 점을 발견하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안 좋은 면을 발견하게 되면 내가 그 친구에게 좋은 자극을 주려고 노력하지.
사실 나는 책 속 캐릭터를 통해서도 자극을 받기도 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부터 영향을 받는 거지. 최근 읽은 책 중에 <더 라이언 오브 마즈(The Lion of Mars)>라는 게 있는데 거기 알비라는 캐릭터가 나오거든. 주인공은 아니지만 메인 캐릭터 중의 한 명이야. 알비는 말투도 굉장히 따뜻하고 친절한 아이인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또 다른 책 속 캐릭터에서는 용기를 배우기도 하고 독특함을 배우기도 하고 그래.”
Q. 아빠와 엄마는 어떤 자극을 주니? 아니면 네가 성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 고쳤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해줘도 좋아.
“아빠 엄마는 내가 자라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지. 무엇보다 항상 내 옆에서 있어주는 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보통의 부모님들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주지 않는데 엄마 아빠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자체, 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너무 좋아.
물론 아빠는 바빠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긴 어렵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주는 게 좋아. 시간이 나면 낭비하지 않고 잘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나도 어른이 됐을 때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껴. 내가 나중에 아빠가 되면 내 일도 열심히 하면서 가족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엄마는 일은 하지만 집에서 하니까 훨씬 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아. 엄마는 좀 철학적이고 창의적인데 그런 면들이 나에게 좋은 자극이 돼.”
Q. 다 컸네, 우리 아들. 빠르면 6학년 정도에 사춘기가 오기도 한다는데 사춘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나는 지금 초등 시기에서 고등 시기로 가는 과정에 있잖아. 어린이에서 청소년 혹은 어른으로 가는 계단에 있는 건데… 그 시기에 누구에게나 성장통이 있잖아, 그런 게 사춘기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업 앤 다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또 다른 삶이 생길 것 같아.”
Q. 미리 짐작해보는 너의 사춘기는 어떨 것 같아?
“음, 학교에서 배웠는데 사춘기에 우울감 같은 게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런 다짐을 하고 있어. 최대한 슬프게 지나가지는 말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고 말이야. 그렇게 주문을 걸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Q. 사춘기에 반항하는 친구도 있고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던데…
“(질문을 끊으며) 걱정 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날 믿어.”
**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막상 때가 되어보면 알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이의 사춘기에 대해 전혀, 1도 걱정하지 않는 엄마다. 오지 않을 것이라거나 아이가 알아서 잘 지나가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닥칠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혼란의 시기를 옆에서 함께 해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
Q. 공부 이야기도 좀 해볼까. 성장하면서 점점 공부할 것도 많아지지? 어때, 힘들어?
“약간 힘들지. 시간은 적고 할 건 많으니까.”
Q. 엄마가 늘 하는 말이 최대한 즐기면서 하면 좋겠다는 것인데, 솔직히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너는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
“물론 공부는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즐겁게 해. 다만 문제가 너무 안 풀리거나 이해가 안 될 때는 짜증도 나지. 그럴 때는 엄마를 부르면 돼. “엄마, 도와줘!””
Q. 가장 좋아하는 공부는 뭐야?
“과목으로 말하자면 지리가 좋아. 4학년에 배우지 않았던 과목이라 새로워서 재밌어.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좋아해. 하지만 공부의 효과만 따진다면 혼자 하는 게 더 효과적이긴 해. 다만 팀 프로젝트를 하면 팀워크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아. 의견이 갈릴 때 논쟁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도 배울 수 있고.”
Q. 엄마는 가능한 네 공부에 간섭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네 입장에서는 너무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궁금했어.
“현재의 방식이 좋은 것 같아. 적당히 지적도 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엄마가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알아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 독일어 같이 엄마가 결코 도와줄 수 없는 데서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땐 또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해결하면 되니까 문제없어.”
Q. 공부라는 게 인간의 성장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미래를 위한 준비지. 어른이 됐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 안 되잖아.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을 텐데, 미래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런 것들에 대비하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
Q. 최근 들어 너의 관심사들도 좀 달라지지 않았니?
“관심사는 그대로인데 방식이 좀 달라진 건 있어. 내가 원래 하나에 꽂히면 그거만 연구하는 스타일이잖아. 지금은 다시 코딩에 꽂혀있는데, 전에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게임을 만드는 데 적용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를 더 공부하고 찾아보고 연구하는 편이야.”
Q. 네가 그리는 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양한 취미 활동도 하면서, 딱딱한 사고에 갇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좋은 에너지를 퍼지게 하는 사람,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12살 끄트머리에 기록하는 내 아이의 성장은 여기까지.
스스로의 힘을 믿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의 계단을 잘 밟아 나가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오늘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내가 해줄 건 늘 그래 왔듯 믿음을 갖고 확실한 지지와 격려를 해주는 것뿐.
엄마는 너의 미래가 너무 궁금하고 기대돼.
- 작가: 어나더씽킹/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베를린에 거주하다 최근 귀국했습니다.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와 교육의 갈 길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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