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존중감 (self-esteem) :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
(위키백과)
언제부턴지 사회에는 종종 자아존중감, 줄여서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다. 부모들은 자존감 높은 아이를 길러내는 것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인 것 마냥 자존감에 목을 매기도 한다. 자존감에 대한 서적이며 강의들은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고 가끔은 너무나 방대한 이론과 방법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된다. 딱히 자존감 테스트를 해보거나 객관적인 지표에 넣고 비교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확실히 자존감이 다소 낮은 편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에 몸서리쳤고 눈에 보이는 능력이나 결과물로 나를 증명해내려 애썼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쪽이 편했다.
누군가와 갈등을 만들기 싫었기에 모든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깊고 이해심 넓은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한 마디에도 얼어붙어 일상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쟁이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한참 후에서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되었다. 이렇듯 건강하지 않은 자아상을 지닌 이 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자,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혼란스러움만 가중되었다.
당최 육아에 소질이 없던 나는 유치원을 보낼 수 있는 최소 나이인 만 1세 때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분명히 아이를 사랑하고 있고, 아이가 예쁘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매여 24시간 살아가는 삶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남편도 야근이 거의 없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를 제외하곤 가족 한 명 없는 이 베를린에서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매일이 너무 지겹고 힘겨웠다. 돌이켜보면 자존감이 없던 엄마라서 그 정도가 더 심했던 것 같다. 당시 출산 후 늘어진 뱃살과 망가진 외모 때문에 굉장히 우울했고, 나라는 사람이 인정받을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음에 두려웠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구차한 변명이지만- 엄마로서 한참 모자란 생각을 했다.
정말 기적적으로 집 근처 유치원에 자리를 얻었고, 아이는 첫 번째 생일을 지나고 한 달 후부터 유치원에 맡겨졌다.
부모의 밤(Elternabend / 엘턴 아벤트)의 회의 안건을 받습니다.
유치원 나비반 웟츠앱 그룹 창에 공지가 올라왔다. 아이가 만 2세가 된 그 해에도 어김없이 일 년에 2회 부모의 밤이 열렸고, 늘 그렇듯 선생님들과 회의를 할 안건을 올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학부모가 ‘아이에게 싸 준 아침 도시락이 그대로 돌아와요. 아이가 아침을 아예 먹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운을 띄웠고, 이에 질세라 여러 학부모들이 연이어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내용인즉슨 왜 선생님들은 유치원에서 아이가 아침을 먹도록 도와주지 않는가? 였다. 사실 우리 아이도 일주일에 몇 번은 아침 도시락이 거의 그대로 돌아오기 일쑤였기에, 꽤 흥미로운 안건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녁, 부모의 밤이 열렸다.
나비반 대표 엄마가 먼저 이 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그러자 다른 엄마 혹은 아빠들도 이에 동의하는 의견을 토해냈다. 잠시 시끄러웠던 순간이 지나고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는 유치원 교장선생님과 나비반 선생님의 차례였다. 여자 교장선생님은 아주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 우리 유치원은 아이들의 자의식과 자존감을 키우는 것을 일 순위로 여깁니다.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한 학부모가 반기를 들었다.
” 아직 만 2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결정을 합니까? 계속해서 아이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앞으로도 유치원 생활에 지장이 있을 겁니다.”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의견과 이유를 대며 유치원 측의 어떠한 조치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을 한참 듣던 교장 선생님은 다시금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 당연히 아이는 밥 먹는 것보다 노는 것을 택할 수도 있죠. 순간의 감정으로요.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가 어떠한지도 스스로 배워나가야만 합니다. 아침을 제시간에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구나 이런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아이가 아침 식사 시간이 아님에도 배가 고프다고 얘기하면 점심시간 전까지 언제든 도시락에 싸온 음식을 먹게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강제로 먹일 수는 없어요. 그것은 아이의 선택에 맡겨야 하고 이를 따라주고 믿어주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부모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아이들은 더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저희의 교육방침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침 도시락은 너무 많이 싸서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침묵. 아무도 더 이상 토를 달 수없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 또는 신선한 사건으로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아이는 방치당하는 걸까 아니면 교육을 받고 있는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늦은 오후까지도 입 주변에 잔뜩 묻어 굳어있는 토마토소스를 보거나 뒤집어 입혀진 바지 혹은 잔뜩 헝클어져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볼 때 그랬다. 가끔 유치원 하원 후, 외모가 정돈되지 않은(?) 아이와 함께 한국에 있는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혹시나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돌보지 않거나 학대하는 건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매일 아이가 어땠는지 선생님께 묻곤 했었는데 지나치게 피곤해하거나 짜증을 냈던 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좋았어.’라는 말만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런 대답이 못 미덥게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고, 작고 귀여운 아이는 엄마 얼굴을 보자 방긋 웃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화를 신다 말고 조그마한 손으로 신발 한 켤레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곧장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갔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자신의 신발 한 켤레를 뒤집어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쓰레기통 위에서 최선을 다해 흔들어댔다. 영문을 몰라 멀뚱 거리는 나를 보더니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놀이터를 갔었는데,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를 터는 거예요. 평소에도 저렇게 혼자 털어요.”
나의 모든 걱정이 기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결정적인 날이었다. ‘모든 게 좋았다’라는 선생님의 말은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와 떨어져 유치원에서 보내는 오랜 시간 동안, 어릴 거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자의식을 형성해갔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법과 어떤 결정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집에서도 전적으로 유치원에서 하는 방식대로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독일 유치원의 교육방식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고, 단번에 안심하진 못하셨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해주셨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 아니라면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느려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 이 단순한 개념은 거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었다. 아이가 기저귀를 뗄 때, 수면교육을 할 때, 식사예절을 배울 때, 심지어 놀이를 할 때에도 말이다.
나 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교육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면 그 교육을 토대로 다음 세대를 길러낼 수 있을 텐데 이런 교육은 그저 교육학 교과서의 이상적인 참고 사례 정도만으로 접했던 터라 받아들이고 실행하기에 꽤나 어려움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끝까지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도와줘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분노가 차오르고 답답하고 모든 게 급했다. 그런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을 배우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혼자 옷 입는 아이를 최대한 기다려주고, 유아용 변기 바로 앞에서 오줌을 싸도 괜찮다 해주어야 했다. 물론 가끔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때도 있었고, 억지로 부드럽게 말하려다 오히려 더 윽박지를 때도 있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는 훈련과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아이가 만 5세가 되어서야-꼬박 3년이 넘게 걸러서야- 비로소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 하기 시작했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자란 것이, 온몸에 베인 습관이 이렇게나 무서울 줄이야.
아이가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만 유난히, 열렬히 칭찬하던 과거를 내려놓고 아이의 존재만으로 칭찬해주었다.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무조건 혼내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전환이 아이를 넘어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의 경험은 인생에서 큰 힘을 지닌다.
사람은 과거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일 유치원에서의 교육방식이 때로는 방관 혹은 무관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만 5년간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 입장으로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바이다.
독일은 나치 정권 시대의 아돌프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저지른 만행과 비극을 겪어내면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곧이곧대로 순종하거나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을 기르는데 집중한다. 이 방식이 또한 절대적으로 옳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아이 스스로가 성취감과 실패를 온전히 느끼고 내면의 힘을 길러나가는 방식에는 기꺼이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자존감을 높이는 시기는 언제나 열려있다.
한 때, 유아기 시절에만 아이의 자존감을 충분히 높여주면 아이가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굴곡과 변수가 기다리고 있고, 그때마다 자존감은 어느 정도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내 들었다. 반대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낮은 자존감의 사람도 후천적 영향에 따라서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게 되었다.
남은 삶 동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남과의 경쟁으로 인해 높아지는 자존심 말고 스스로의 내면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을 택하리라 정신을 가다듬는다. 인생 좀 더 살아본 어른의 눈으로 해도 안될 일이라 속단하기보다는 아이의 선택이 무엇이든-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만 아니라면-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자존감 높은 어른이 되고 싶다. 혹여나 그 선택 속에서 아이가 좌절하고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따스한 위로 한마디와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쓰러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싶다.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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