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휴가차 나왔다. 코로나로 바뀌어 버린 세상 모두가 길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고 이제 이런 모습이 어색하지가 않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던 중 거실 바닥에 놓인 신문에서 한 문구를 보았다. “성공 못하면 어때! 실패를 공유하라!” 이 문구를 보고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 글을 쓸 마음이 생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야 새로운 글을 쓸 주제를 찾은 것 같다.
요즘 주변에는 온통 성공한 이야기밖엔 없다. 티브이를 틀어도 성공하고 잘 나가 나는 연예인들이 잘 사는 모습이 나오고 주식이 인기인 요즘 주변에서 모두가 다 주식으로 돈을 번 얘기만 들린다. 세상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성공해서 잘 사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베네핏에 관심이 있다. 모두에게 나도 성공한 사람들처럼 돼서 그들이 누리는 것을 나도 누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성공 이야기들을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괴리감이 들고 나의 삶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을 보게 된다. 그러다 가끔 누군가의 실패 이야기를 들을 때 내 이야기 같아 공감되고 그 사람이 그 실패 가운데서 다시 일어난 모습을 보며 힘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독일에 살아가며 경험한 많은 실패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독일 생활에서 내가 한 바보 같은 짓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 다 쓰기 어렵다. 그 바보 같은 행동들은 모두 크고 작은 실패들로 이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큰 첫 번째 실패는 바로 독일어다. 이미 내가 독일에서 대학생활을 하기 전에 경험한 일이다. 유학하는 모든 유학생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도 독일 유학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2009년 처음 독일에 와서 나는 그 해 겨울학기부터 자동차 공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싶었다. 독일에서 대학교는 보통 겨울학기에 시작한다. 여름학기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만 모든 교과과정이 겨울학기를 1학기로 놓고 편성되어있고 만약 학사과정을 여름 학기부터 시작하게 되면 기준으로 편성된 교과과정과는 약간 다른 흐름으로 학업을 진행해야 한다. 학교나 학과에 따라 아예 여름학기부터 시작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나도 독일에 도착한 첫해 상반기 동안 독일어 공부를 마치고 (여기서 마친다는 말은 대학에 들어갈 자격조건이 되는 독일어 자격증 취득을 말한다) 겨울학기부터 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독일에 오기 이전에 이미 6개월간 집중강좌를 통해 매주 5일 4시간씩 독일어를 공부해왔기에 독일 현지에서 반년 더 공부하면 독일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독일어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에 도착한 이후 7월 겨울학기 지원 시즌 이전까지 정말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했다. 매일 4시간씩 주 5일 어학원을 다니고 다녀와서 오후엔 또 숙제를 하고 단어를 외우며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기초를 배우던 때와 달리 어학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따라가는 것이 어려웠고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는 것과 달리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숙제도 겨우 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 중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고 당당히 답하지도 못했고 나와 같은 반인 데도 이미 독일 사람처럼 독일어를 잘하는 것 같은 친구들을 보며 매일 자신감은 떨어졌다. 그러나 내가 계획한 것을 꼭 이루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없음에도 대학 지원에 필요한 TestDaF라는 독일어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고 실패했다. 점수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잘 나오지 않았고 시험 일정상 이제 겨울학기 지원 이전에 다시 도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힘들었던 마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고 나의 독일어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독일 대학에 들어갈 어학 실력을 갖추지 못한 나는 겨울학기 지원은 할 수 없었기에 계속 어학을 공부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개월을 더 공부한 뒤에야 독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어학자격을 갖추게 되었고 나는 독일에 온 다음 해인 2010년부터 학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두 번째 실패는 직장생활 중에 경험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임대계약으로 일하던 시기에 나는 외장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했다. 임대계약은 보통 1년이며 이 1년이 지나면 연장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게 되고 연장된다면 다시 1년을 임대계약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는 임대계약 연장이 아닌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논의하게 된다. 즉 계약직으로 2년을 일하면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나를 임대했던 기술개발 서비스 회사를 떠나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로 이직하게 되는 거였다. 첫 1년 임대계약으로 근무를 마치고 다행히 계약을 연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임대계약과 달리 1년이 아닌 10개월이 연장되었는데 특별한 사유 없이 단순히 연장되어 넘어가는 해 12월까지 근무한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내 임대계약 연장이 일반적이지 않고 이 계약이 끝나는 12월엔 나를 임대해서 쓴 메르세데스 벤츠가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기도 했다. 왜냐면 임대계약 연장은 1회만 가능한데 연장이 되었음에도 24개월을 임대계약으로 근무하지 않았기에 임대로 나를 데리고 간 회사에게 반 강제되는 정규직 전환도 강요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 연장이 되었을 때 이런 계산 하지 않고 다시 열심히 일했다. 그곳에서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하는 일이 너무 재밌고 보람되었기에 열심히 했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주어진 과제 안에서 특별한 변화나 업무의 과정에 개선이 없이 그냥 열심히만 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팀장도 내가 보고하는 내용에 크게 불만은 없었으나 뭔가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과 방법을 기대했던 디자인 팀에서 나는 그동안 계속 써왔던 방식과 도면의 형식을 따라 열심히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 뭔가 새로운 것을 제안하거나 적극적인 자세로 기술적인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런데 그때 뭔가 내 안에 나는 계약직이니까 이렇게 해야 하는 일들 주어진 일들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과 내가 나서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소극적인 업무가 나에겐 결국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을 하지 못하는 실패를 경험하게 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네가 이런 점이 부족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는 평가나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12월 마지막 근무일에 내 자리를 정리하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나오면 나는 그동안 내가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많이 부족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후회했다. 사실 디자인 팀에서는 나에게 부서에 새로운 직원 채용에 대한 수요가 없고 부서에 인력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계약이 끝나기 두 달 전 다른 완성차 회사에서 한 명이 이직하여 디자인 부서에 들어왔기에 나는 그 말을 내 계약 전환을 하지 않으려는 핑계로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 이때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물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임대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내가 백수가 된 건 아니다. 나를 임대로 보냈던 내 원래 회사가 있었고 그곳에 돌아가 다시 내가 투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다리면 됐다. 그런데 당시 내가 힘들었던 건 왜 나에게는 뭔가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기술적인 토론에 참여할 능력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나는 매일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은 달라져야지라는 생각으로 나를 매일 채찍질한다. 이 계약 전환의 실패로 나는 그 이후 4개월간 프로젝트가 없는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난 사실 아직도 독일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 나라가 아닌 외국 땅에서 겪는 실패는 그 크기를 떠나서 내게는 늘 힘들고 버겁다. 그런데 그런 많은 실패들이 쌓여 독일 땅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게 하는 힘이 길러지는 것 같다. 실패를 마주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지만 혹 겪게 되더라고 매번 그 실패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을 잘 캐치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실패를 통해 내가 잃어버리거나 손해 보게 되는 것들이 아깝다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 작가: Eins / 아우디 회사원
직접 경험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입니다.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독일로 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중
- 본 글은 Eins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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