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와는 달리 쨍한 햇빛과 밤 9시가 넘어도 밝은 나날들, 그리고 어딜 가든 가득한 사람들과 더불어 온 생기 있는 도시의 모습에 흡사 코로나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공원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없고 다들 축구 시즌에 걸맞게 매일 같이 맥주병을 들고 다니며 축구 관람을 하기에 바쁘다. 락다운으로 인해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가 지나고 다시금 자유로운 일상생활로 거의 다 돌아온 지금, 사람들은 여름휴가에 들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시 느끼는 자유에 의한 것인지 전보다 더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느낌까지 받는다.
한 달 반 정도 비운 집이지만 그동안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캐리어를 끌고 집에 들어갔다. 집 안에서 나오는 모든 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도꼭지 같이 생긴 것을 꽉 닫고 나온 상태여서 변기 물을 포함해 모든 물이란 물은 다 말라 있었고 내가 정리하고 간 그대로 집은 조용하고 차분하였다. 다행이었다. 벌레가 다녀간 흔적도 없고 냉장고도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었고 먼지가 그렇게 많이 쌓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바로 커튼 사이에 비치는 발코니를 보고 나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전부터 가끔씩 어디선가 모르게 던져지는 쓰레기(담배꽁초, 빈 페트병, 작은 종이 상자 등)가 내 발코니에 떨어져 속으로 욕을 하며 치웠던 게 몇 번 있었기에 한 달 반 동안 쌓였을 몇 안 되는 쓰레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고 나의 예상을 한껏 뛰어넘어버렸다. 쓰레기들과 함께 새시체가 덩그러니 있는 것 아닌가. 거기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몸통은 오간데 없고 다리 하나는 또 멀찍이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왜, 나한테 왜,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나보고 뭐 어쩌라고, 왜!!!!!!!!
우선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기숙사 담당자에게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냈다. 독일에서는 뭐든 남겨 놓아야 한다. 메일이든 종이든 사진이든 남겨서 담당자에게 항상 보내야 한다. 어떻게든 남겨 놓아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증거자료가 있어야 상대방에게 반박하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누가 그랬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너무 충격적이다, 등의 말들을 줄줄이 적어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고 손은 계속 떨리기만 하였다. 우선 진정을 해야 할 것 같아 커튼을 치고 발코니가 최대한 안 보이게 한 후 짐 정리를 하였다. 지금 저 발코니는 내 집이 아니다, 내 집은 창문 안에 있는 이 공간뿐이다, 저 발코니에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라고 계속해서 나를 세뇌시켰다.
다음 날이 되었지만 기숙사 담당자에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였고, 나는 정말 미안하지만 새 시체만이라도 같이 치워 줄 수 있을까? 나 쳐다만 봐도 토할 거 같아, 라며 다시 한번 메일을 보냈다. 역시나,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망연자실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이대로 계속 기온이 올라가기만 할 일기예보를 보고 있자니 답장을 멍하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거기다 새 시체 때문인지 예전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오고 가는 비둘기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더 무서워졌다.
하루를 그렇게 더 보냈다. 사흘이 지나고 나자 조금씩 나에게도 면역력이 생기나 보다. 처음에는 발코니를 슬쩍만 보아도 온 몸에 닭살이 돋았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계속 아무런 대책 없이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거기다 던져지는 것인지, 바람에 날려온 것인지 모를 이 쓰레기들이 내 발코니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까지 찾기 위해 온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다른 층의 발코니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고 시골에서 새들이 열매를 못 먹게 막는 네트를 걸어둔 발코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네트로 발코니에 뚫린 부분을 막으면 새들도 못 들어올 것이고 쓰레기도 막을 수 있으니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최고의 방법이었다. 바로 네트를 아마존에서 주문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눈 딱 한 번 감고 치우자, 깨끗하게 치우고 청소한 후 네트까지 설치를 해서 나의 발코니를 지켜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후드 집업과 긴 바지를 입고 고무장갑을 꼈다. 운동화를 빨 때 사용하려고 샀던 솔과 함께 화장실 청소 시 사용하는 세제, 그리고 방바닥을 닦을 때 사용하는 큰 물티슈와 쓰레기통을 들고 크게 한 숨을 쉰 후 창문을 열었다.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새 시체는 집 안에 있던 상자로 들어 올려 바로 쓰레기통으로 넣었고 나머지 쓰레기들도 다 집어넣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발코니의 모든 곳 곳곳에 세제를 뿌리고 솔로 벅벅 문질렀던 것 같다. 어쨌든 다 치웠다. 그리고 치우면서 발견한 우편물 같은 종이들에 적힌 이름들이 하나같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범인은 이 자식이다, 그리고 이 자식은 내 옆방에 있는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다, 라는 것까지 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깨끗해진 발코니와 이름이 적힌 우편물들을 찍어 다시 기숙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무런 답이 없었기에 대나무 숲에 소리 지르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사진에 보이듯이 이번에는 내가 청소 다 했어, 그리고 이런 우편물들을 발견하였고 모두 다 보시다시피 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거야, 이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든 모든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든, 발코니에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혹은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은 물건을 발코니에 두는 것을 금한다고 전해줘, 혹은 다른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래,라고 말이다. 허무하게도 나의 마지막 메일에는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내가 청소를 다 했다고 해서 답장을 주는 것인가, 아님 내가 청소하길 기다렸던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답장이었기에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답장은 아주 짧았다. 너의 메일들 모두 보내줘서 고마워, 이 사람에게 이메일을 써서 경고할게, 오늘 하루 잘 보내렴.
청소한 후 발코니 모습
너 같으면 오늘 하루 잘 보내겠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며칠을 끙끙 앓게 했던 발코니가 어쨌든 다시 깨끗해졌고, 범인까지 찾아내었으며 그 범인에게 담당자가 메일까지 써준다고 했으니 이번 사건은 해결된 것으로 만족하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정신 나간 나의 멘탈을 어떻게든 붙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도착한 네트를 혼자서 이리저리 사이즈에 맞게 자르고 엮고 고정하며 어떻게든 걸었다. 금방 할 것 같았던 일이었지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네트를 치다가 범인이 아닌 반대편 옆방 사람과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오고 8개월 만에 이웃집을 알게 된 것이다. 네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하려고 나왔다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문을 틔어 준 이웃에게 반가움을 표하며 토마토를 잘 키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였다고 나도 인사를 하였다. 예전 나의 글에 나온 토마토를 키우는 이웃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친절하고 따뜻한 이웃과의 인사는 도착하자마자 발코니를 보고 받은 충격에 대한 위로를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네트를 걸 수 있는 부분이 발코니 제일 윗부분에는 없었기에 발코니의 중간 정도까지만 일단 가릴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이제 쓰레기와 비둘기들이 들어오는지 지켜볼 차례다. 이렇게까지 하였음에도 쓰레기나 비둘기가 들어온다면 다시 방법을 강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비둘기들은 가끔 빗물이나 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발코니 아래에 만들어진 구멍을 통하여 가끔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발코니에 들어 오려다가 네트를 발견하고 유턴을 하거나 옆 집 발코니로 들어가는 모습만이 포착되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발견한 담배꽁초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직 다른 쓰레기는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금과 같다면 굳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아직까지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발코니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라보며 발코니로 나갈 때 움찔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쨍한 햇살과 함께 처음 마주쳤던 충격과 공포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져 가는 것 같다.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 응원의 메세지나 문의를 아래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작가님께 메세지가 직접 전달이 됩니다.
ⓒ 구텐탁코리아(http://www.gutentag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