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사를 하고 했던 CAD서포트 프로젝트에서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투입되어 일하는 중에 어느 날 나의 직속 팀장이 아닌 다른 팀의 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팀장은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 부서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받아서 그 프로젝트를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던 중 나의 팀장으로부터 나의 프로필을 받아보았고 내가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었다. 사실 연락을 받고 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나는 지금까지 자동차 디자인 관련 어떤 설계나 기술 개발을 해본 적이 없는데 왜 나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저 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결론 외엔 아직도 그때의 상황이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난 자동차의 익스테리어 디자인 엔지니어링 부서에 투입될 목적으로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부서장과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나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팀장이 함께 동석해서 면접을 보았고 큰 어려움 없이 투입이 결정되었다.
2016년 7월부터 시작된 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파견근무는 그렇게 나에겐 너무 기적처럼 다가온 기회였고 프로젝트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파견된 기간 중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게 정말 많았던 시간이었다.
처음 디자인 스튜디오에 가서 면접을 봤을 땐 1층에 로비 외에는 건물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본 디자인 스튜디오는 정말 너무 멋있었다. 5 손가락을 모티브로 만든 건물은 남쪽 방면은 통유리로 되어있었고 자동차 모델이 만들어지는 1층과 디자이너들이 자리한 2층 그리고 디자인 부서 수장들과 내가 속해 일했던 디자인 엔지니어링이 위치한 3층까지 가운데가 뚫려 있어 내가 앉은 3층에서 가장 밑에 층에서 클레이 모델을 작업하는 동료의 모습이 보였다. 통유리창을 통해 하루 종일 해가 들어왔고 계절별로 멋진 풍경도 내가 앉은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1층 로비에 있던 커다란 삼각별을 보며 사무실로 들어갈 때 느꼈던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처음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맡게 된 프로젝트는 차세대 S클래스 모델로 내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이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을 때는 이미 디자인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었고 그때 참여하여 일했던 차세대 S클래스 모델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출시가 되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자동차 외장 디자인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를 점검하고 기술부서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벋어 난 부분에 대해서 디자인이 어느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정리하여 디자이너와 익스테리어 디자인 부서장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그 이후 디자이너들이 다시금 어떤 라인을 어떻게 수정할지 결정한 뒤 디자인 모델을 수정하고 다시 나에게 스캔 데이터를 주면 난 다시 그 모델을 기술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점검하는 일을 했다. 일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디자인 모델과 기술 가이드라인을 점검한 뒤 문제가 되는 부분을 CAD 도면에 나타낸뒤 그 도면을 출력해서 스튜디오 벽면에 붙여놓고 발표했던 것이었다. 보통 기술개발 부서에서는 CAD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모니터를 통해 보고 프로젝터 등을 이용해 회의실 안에서 같이 보면서 논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디자인 스튜디오에 문제가 되는 자동차의 외부 라인을 디자이너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도면을 실제 크기로 출력하여 그 도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동차 측면 라인을 도면으로 나타내어 출력했을 땐 높이 1,5미터 길이 4미터의 도면도 출력해서 스튜디오 벽면에 붙여놓은 적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요즘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사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 A-Class Surface 모델을 보는 회의실에선 아주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3D 모델을 직접 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도면을 출력하여 2D의 종이에서 라인들을 세세히 보고 서로가 펜을 들고 그 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하던 것이 내게는 너무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자동차 익스테리어 디자인 엔지니어링중에 내가 배운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면 인체공학이다. 운전자와 탑승자에 닿아있는 인테리어뿐 아니라 자동차 익스테리어도 인체공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주 많은데 예를 들어 문의 손잡이의 위치는 문을 여는데 필요한 팔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전면 유리와 자동차 천장을 구분하는 라인은 운전자가 정지선에 멈추어 섰을 때 신호등을 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몸의 움직임을 결정하며 사이드미러의 위치는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사이드 미러를 보기 위해 돌려야 하는 머리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이렇듯 자동차 익스테리어 디자인에서는 사람의 인체공학적인 움직임을 고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고 이 외에도 아주 많은 법률 사항들을 고려해야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매주 디자인이 조금씩 수정될 때마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고 어떤 문제는 더 심해지며 어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수정과정을 거치며 결국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가장 많이 들어간 첫 번째 스케치 모델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지만 디자인 부서뿐 아니라 기술 부서 역시도 최초의 콘셉트를 지키고 최대한 디자인의 일반화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한 지 어느덧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여름 즈음에 나와 함께 S클래스 모델을 담당하던 동료가 여름휴가를 길게 가게 되면서 그 동료가 맡아서 진행하던 사이드 미러 디자인 엔지니어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동료 대리로 맡았었는데 이후에 그 동료가 휴가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내가 계속 사이드 미러 디자인 엔지니어링을 맡았고 그 동료는 다른 파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사이드 미러 디자인 엔지니어링은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 부서 안에서 작은 파트가 아니었다. 왜냐면 이 S클래스에 들어가는 사이드 미러가 디자인되면 이 사이드 미러가 이후에 나오는 E클래스와 C클래스 모델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SUV 모델에 적용되기 때문에 S클래스 사이드 미러를 디자인하던 프로젝트는 내게는 많은걸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S클래스와 사이드 미러 디자인은 내부 프로젝트 명칭도 달리하여 진행되었고 사이드 미러를 따로 디자인한 뒤 그 미러가 처음 적용되는 S클래스에 이음 부분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이 사이드 미러에 관련해서도 정말 많은 법규들이 있었는데 S클래스는 거의 전 세계 주요 판매 국가에 수출되기 때문에 사이드 미러 디자인을 위해 정말 많은 법률들을 찾아보고 읽었던 게 생각난다. 어느 날은 사이드 미러를 S클래스에 접합시키는 다리가 되는 부품의 디자인을 마치고 사이드 미러가 접혔을 때의 자동차의 최대 폭을 측정했는데 맨 처음 자동차를 구상하고 목표했던 폭보다 2mm 정도가 더 넓게 나왔다. S클래스의 경우 대형 세단이라 길이나 폭이 긴 편인데 사이드 미러를 접은 상태에서 2mm의 폭이 더 길게 나온 건 차고를 들어가거나 할 때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이 2mm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기술부서와 디자인 부서 간의 조율이 필요했다. 그런데 난 당시에는 이 2mm의 차이가 나를 힘들게 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이 작은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디자인 적으로 사이드미러의 헤드 부분을 조금 작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도 사이드 미러 안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부품들을 위한 공간을 고려하며 줄여야 했기에 쉽지 않았고 디자이너가 수정하고 Wind tunnel에서 공기역학을 점검하면서 다시 수정한 부분이 취소되고 공기역학적인 부분에서 괜찮다는 판단을 받은 뒤 수정된 모델을 기술 부서와 맞추면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의 공간이 침해되어 다시 수정하고…이 과정을 반복하기를 여러 번 그리고 이 과정 중에 디자인과 기술 그리고 공기역학 부서 간의 조율을 위한 미팅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두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어느 날은 내 자리에 앉아 한참 CAD 프로그램을 통해 사이드 미러를 보면서 그냥 자동차 전체 폭을 2mm 더 늘려서 이 문제를 끝내면 안 되나? 왜 꼭 처음 모델 전략 수립 때 정한 폭을 바꿀 수는 없는 거지? 하며 한참을 멍 때리며 생각하다가 갑작스레 이래서 자동차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는 건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1-2mm의 오차도 아주 작은 부분의 문제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고객들이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브랜드에게 다른 브랜드와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2년의 시간을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보내면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경험들도 분명 있었다. 계약직으로 파견되어 일하는 나에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일들도 있었고 다임러 그룹이라는 대형 자동차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정하는 가운데 많이 망설이고 주저하고 그로 인해 그에 속한 부서들도 함께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모습도 보았고 복잡한 내부 프로세스로 인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것도 한참을 걸리는 등의 문제점들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을 나와 그때 내가 경험한 파견근무를 돌이켜 볼 때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왜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브랜드가 자동차를 처음 만든 이후 130년 넘도록 여전히 세계에서 명성 있는 브랜드로 자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지금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쟁사인 아우디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난 여전히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왜 지금도 높은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고 그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높은 지를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 작가: Eins / 아우디 회사원
직접 경험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입니다.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독일로 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중
- 본 글은 Eins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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