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상황은 여전했다.
코로나 확진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고, 유치원은 계속해서 문을 닫았다. 국가 운영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긴급 보육을 신청할 수 있기에 나는 여전히 그 무리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국가적 재난 상태를 인지하기도 전에, 당장 끝없는 독박 육아라는 부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이와 24시간 함께하는 시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고, 유치원에 가느라 엄마와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회복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 속에 집에만 갇혀 매일을 보낸다는 것이 엄마와 아이 둘 다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유치원으로부터 메일이 한통 왔다.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한 가지 대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정해진 두 가정의 공동육아는 허용한다는 내용이었으나 딱히 떠오르는 가정이 없기도 했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싶어 별생각 없이 메일함을 닫았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메일을 받고 난 며칠 후 토요일 오전, 우리 가족은 여느 때 와 같이 집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입구에서부터 경비원이 마스크 착용 및 1인 1 카트 여부를 엄격히 검사했다. 사람들 간의 거리 유지를 위해 구매할 물건의 양에 상관없이 무조건 큰 카트를 끌고 들어가야만 했다. 입구를 무사히 통과하여 평소와 같이 장을 보고 계산대로 향했다. 넘쳐나는 인파 속에 겨우 줄을 서고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두는데 바로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딸아이와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L의 엄마였다. 복잡한 계산대를 지나면서 먼저 인사를 할까 말까 속으로 몇 번을 망설였다. 그러다 그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계산을 끝내고 나오니, 이상하게도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짧은 안부를 나눈 후 그녀가 말했다.
” 혹시 우리 공동 육아 같이 해보는 것 어때? 너만 괜찮다면 말이야.”
우리 아이는 듣자마자 쾌재를 불렀고, 나는 얼결에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틀 뒤, 월요일부터 우리의 공동 육아가 시작되었다.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두 가정이 만나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친구인 L의 집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공동 육아 첫날은 우리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함께 있다가 적응이 되면 아이들만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해보자고 했다. 독일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는 나는 독일 사람을 만나면 종종 긴장 상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편인데, 그날도 아마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우리 아이는 너무나 쉽게 친구 집에 적응을 했고, 다음부터는 아이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에는 딸 친구 L과 그녀의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 되었다. 괜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야심 차게 잡채를 만들었고 전날 구워둔 케이크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행히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라 잡채를 정말 맛있게 먹어주어서 굉장히 뿌듯했지만, L은 원래 입이 짧은 터라 잡채 면을 깨작거리더니 결국 맨 밥만 한 공기를 먹었다. 낯가림이 살짝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더니 조금씩 우리 집에 적응해 가는 눈치였다. 그렇게 서로 테스트해보는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그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공동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서로의 집에 각자의 아이를 보냈다. 처음에는 2시간 정도 놀게 하다가 괜찮으면 차차 시간을 늘려서, 최대 5시간까지 맡기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통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이 먹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반면, 대부분 독일 엄마들은 비교적 요리하기 수월한 음식들로 식사를 간단히 구성하는 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잘 먹이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라고 생각한 나는 매번 고심하여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기껏 고기와 야채를 다져서 토마토소스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두면, 그 아이의 엄마는 간 토마토가 들어있는 튜브를 내밀며 이걸로만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부탁하기도 했다. 오로지 간 토마토소스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 약간만 넣고 만든 스파게티를 그 아이는 두 그릇이나 먹어치웠다. 그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도 손이 덜 가고 간단한 음식들, 가령 팬케이크 혹은 냉동 생선가스를 구워주거나 토스트나 구운 소시지 같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면서 ‘잘 먹이는 것’의 정도를 줄여나갔다. – 하지만 직접 구운 케이크나 쿠키는 예외이다. 독일 사람들에게 베이킹은 당연시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 심지어 독일 아이들이 가정에서 먹는 일반적인 간식의 형태는 오이 스틱, 당근 스틱 아니면 사과나 배 같은 간단한 과일 정도이기 때문에 먹을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보다는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놀잇거리를 준비해놓거나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외동인 우리 딸과는 달리 딸의 친구는 이미 초등학생 오빠가 있다. 그 가정의 놀이 도구의 종류와 범위는 우리 집에 비해서 굉장히 무궁무진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에서 종종 심심해하던 L과는 달리 우리 아이는 친구 집에서 돌아오기를 여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걸복걸해야 겨우 발걸음을 떼기 일쑤였는데 그 전날 아무리 설명을 해주고 약속을 해도, 헤어지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우리 딸은 집에 가기 싫다며 징징거렸다. 그러는 통에 나는 발목이 묶여 좀 더 그 집에 머무를 때가 많았고 오히려 그 덕에 나도 L의 엄마와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차 속 마음을 터 놓게 되었다.
함께 하는 시간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모든 관계는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문화, 가치관, 생각 그리고 언어가 달라도 육아라는 공통점으로 만나고 보니 사실 엄마의 삶은 어디든 동일했고, 아이를 기르는 방식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가끔 외국인을 무시하는 독일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반면에 아무런 편견 없이 마음을 열고 조금은 낯선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독일 사람들도 꽤 많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각자의 장난감을 나눠 쓰고, 같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두 아이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스며들었으리라 믿는다. 염려 반 설렘 반으로 갑자기 시작되었던 공동육아는 꽤나 즐겁게 두 달 남짓 이어졌다. 그리고 3월 초가 되어 유치원이 정상운행을 시작했고 나도, L의 엄마도 그나마 한시름 놓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공동육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부활절이 다가오던 4월 초, 독일 전역은 급격하게 치솟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에 의해 또다시 비상사태로 돌입했다. 변이 바이러스도 한몫 톡톡히 한 모양이었다. 각 연방에서는 하드 록다운을 하자, 하지 말자에 따른 의견이 분분했고 메르켈 총리는 감염 속도를 늦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몇 차례의 회의 속에 규율들도 몇 번을 바뀌었는지 모른다. 결국 부활절 연휴를 지나면서 베를린은 더욱 강화된 록다운이 시행되고 있다. FFP2라는 지정 마스크만이 허용되며,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철저히 제한되었다. 저녁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금이 생겼고 덩달아 유치원도 다시금 긴급 보육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4~5세 아이들의 감염 사례가 많이 발생하여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다시 L의 엄마에게 SOS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 또한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계속될수록 그 무거운 짐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비록 언어가 다르고 생각도 문화도 다르지만, ‘함께’의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혼자 보다 강하다.
전 세계가 하나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부디 서로 사랑하는 마음 나누기를 멈추지 말자.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힘써 도우자.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마스터 키가 아닐까?
-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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