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공대에서 학업을 시작하고 처음 두 학기 동안에는 정말 많이 헤맸다. 독일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 것부터 학교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수할 때도 많이 있었다. 다행히 같은 학과는 아니었지만 기초 과목을 같이 들으며 알게 된 독일 친구 미하엘의 도움으로 그나마 기초과목을 이수하고 조금씩 학교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베를린에서 공부할 당시 지냈던 곳은 사설 기숙사로 베를린 시에서 지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아닌 일반 민간 기업이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당시 17평방 제곱미터의 작은방의 월세는 270유로였다. 학교와는 지하철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래도 지하철을 통해 환승 없이 금방 학교에 갈 수 있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대학교를 1년만 다니고 자퇴를 한 터라 사실 한국에서는 대학생활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은 많이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동아리 활동이나 축제 등 대학생활을 하며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 대학교에는 한국의 동아리 같은 시스템도 그리고 학교 축제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입학식과 같은 행사도 없었다. 다만 신입생들을 위한 Infoveranstaltung이라는 이름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을 뿐 그 외 신입생 입학식이나 MT와 같은 행사는 없었다. 학교 내 동아리 같은 것도 사실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축구나 탁구와 같이 운동을 위한 작은 클럽들이 있어 거기에서 서로 친구들과 운동을 하고 축구의 경우에는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작은 리그 경기도 열리기 때문에 이와 같은 그룹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동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학과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교류하며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많지 않았다. 특별한 학교 내 그룹으로는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그룹을 들 수 있다. 이 그룹은 조금 특별하다. 독일은 자동차 산업으로 아주 유명한 나라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자동차 브랜드들이 독일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베를린에도 다임러그룹의 엔진 생산 공장 그리고 BMW 오토바이 생산공장이 있었고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 그룹이 위치해 있다. 그래서 독일 내 거의 대부분의 공과대학교 내에는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그룹이 있는데 독일에 매년 열리는 Formula Student Germany 라 불리는 경주대회에 자신들이 만든 경주용 자동차를 가지고 나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 경주용 자동차는 당연히 프로 F1 자동차와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작은 소형 경주용 자동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허접하지도 않다. 차체 설계부터 들어가는 엔진과 기타 모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거나 실제 산업체와 협력하여 개발하는데 각 대학교 내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그룹들을 스폰하는 기업들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런 그룹들에서 경험을 가져본 사람들은 나중에 자동차 회사 입사에도 가산점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독일 대학교를 다니며 가장 관심을 가진 그룹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자동차 공학과를 전공하고 있었고 이 그룹은 정말 작은 스타트업 회사처럼 교수 조교 학생 그리고 외부 산업체에서 협력해주는 인원들까지 있어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학기가 되었을 때 이 그룹을 찾아갔고 나도 여기서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의 지원자들 앞에서 그 그룹에 속해있던 조교가 이런 말을 했다. 이곳에서 정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만큼 매년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며 그 결과 너희들의 졸업은 당연히 조금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와서 기숙사를 향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당시에 부족한 독일어로 수업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 중에 있었고 이제 기초과목을 지나 전공과목을 들어가는 3학기에 들어야 하는 과목 수도 늘어난 상황에서 내가 그 그룹의 프로젝트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교가 했던 마지막 한마디… 너희들의 졸업이 늦어질 수 있다는 말… 어쩌면 내가 정말 실력이 있고 공부를 잘 감당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 그룹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주어진 학과를 잘 마치고 제 때에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었던 내게 그 말은 결국 그 그룹에 들어가는 걸 포기하게 만든 한마디였다. 부모님께 돈을 받아서 유학을 하던 때였기에 졸업이 늦어진다는 건 그만큼 부모님께 돈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그룹에도 들어가지 않고 내게 주어진 학과목을 잘 이수해서 늦지 않게 졸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학생활을 하며 부모님께만 의존하지 않으려 작은 아르바이트를 종종 했었다. 한인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도 해보고 일식집에서 서빙도 해보았고 또 다른 일식집에서 초밥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기도 했다. 4학기가 시작하며 드디어 자동차 공학 전공과목을 시작했는데 수업을 하는 교수는 이전에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S-Klass개발을 총괄하던 사람이었고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자동차 공학에 대해 가르쳐 주었던 그 교수의 과목들은 내게 특히 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한인식당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늦게 마무리를 하고 나오느라 집에 자정을 넘겨 들어왔고 다음날 아침 8시에 내가 좋아하던 자동차 공학 전공수업이 있어 일찍 잠을 자려고 했음에도 씻고 정리하고 나니 새벽 1시에나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서 그 전공과목을 듣는데 1시간 반 수업 중 거의 절반 이상을 졸았다. 그렇게 그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에 앉아서 난 왜 이렇게 정신력이 약하지… 아르바이트를 줄여야 할까? 아니면 아예 그만두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정말 배우고 싶고 배워야 할 과목 수업에서 졸고 있었던 내 모습이 정말 많이 한심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한 달 뒤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내게 정말 재미있었고 또 잘하고 싶었던 전공과목 공부에 집중하며 학기를 마무리했다. 지금 돌아보면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공부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도 든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로 수업을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핑계 대고 싶지만 어쩌면 내 노력이 그리고 정말 정신력이 부족했던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더 어려워지는 전공과목들 속에서 나는 처음 대학교 공부를 시작하던 때에 정말 파이팅해서 꼭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야지 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제발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제발 학기를 정상적으로 잘 마쳤으면 제발 원하는 시기에 졸업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버티며 지나왔다.
베를린 공대는 Zoologischer Garten(동물원 공원)이라는 지하철 정거장에서 가깝다. 그래서 옆에는 베를린 동물원이 있었고 주변으로 넓은 공원이 있었다. 이 공원을 끼고 걸쳐 대학교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조금만 걸어가서 이 공원을 산책할 수 있었다. 공원 외에도 학교 건물 사이사이로 많은 공터가 있었는데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것처럼 그 공원과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고 책 읽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여름에는 해변에 온 것처럼 선탠을 즐기는 사람부터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치는 학생들도 볼 수 있다. 베를린 공대 옆에는 UdK라는 음악예술 종합대학이 자리하고 있고 그 학교와 함께 사용하는 학생식당인 Mensa가 큰 길가에 있다. 이 멘자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공원을 걷는 일이 나에게도 매일 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고 사실 내 입맛엔 학생식당 음식이 꽤 맛이 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점심을 그곳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학생 식당은 학생이나 교직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Guest card를 발급받으면 조금 더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식사를 할 수 있다. 대학 생활중 경험한 것 중 또 재미있었던 건 Uni Sport (대학교 스포츠 프로그램)을 통해 수영을 배웠던 것이다. Uni Sport에는 수영 외에도 정말 다양한 운동들이 있는데 농구와 같이 배우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농구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부터 기초부터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복싱, 수영, 댄스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중에 나는 수영을 선택해서 배웠는데 1주일에 1번 1학기 동안 배우는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그때까지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완전 기초반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덕분에 수영기초를 배울 수 있었고 지금은 수영을 할 줄 안다. 이 Uni Sport프로그램 역시도 Mensa (학생식당)처럼 학생과 교직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열려있으며 등록비용은 학생, 교직원 그리고 일반인이 서로 다르다.
설레었지만 어리바리하기도 했던 첫 학기를 지나 많이 익숙해진 캠퍼스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자동차를 공부하고 배우면서 2012년 첫 인턴을 위해 슈투트가르트로 이사를 갈 때까지 나름 독일 대학교에 낭만을 느끼며 의미 있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던 시간을 지나왔다.
- 작가: Eins / 아우디 회사원
직접 경험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입니다.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독일로 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중
- 본 글은 Eins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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