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일 인턴 이야기
슬기로운 첫 번째 독일 인턴생활
처음 인턴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 정말 기분 좋게 그리고 당당하게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제 6개월 동안은 인턴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동안은 돈을 부쳐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계속 나의 독일 유학생활을 위해 돈을 보내주시는 부모님께 가지고 있었던 미안한 마음과 6개월의 시간이지만 이 시간만이라도 나에게 돈을 부쳐 주지 않으시면 분명 부모님께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계약서도 받아 들지 않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인턴 합격 소식과 내가 인턴 하는 동안에는 돈 보내주시지 않아도 된다는 당당한 나의 의견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인턴 계약서가 도착했다. 계약서를 통해 내가 한 달에 인턴을 통해 받게 되는 급여가 650유로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인턴 하면서 잘 아끼며 살면 충분히 부모님 돈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턴을 할 곳에서 지낼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한 하숙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남편을 잃고 남편과 함께 지은 집에서 딸과 딸의 남자 친구 그리고 또 다른 하숙생과 살고 있는 한 독일 아주머니네 집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이름은 크리스틴이었다. 크리스틴 아주머니는 나에게 정말 친절했다. 내가 베를린에 있어서 비싼 기차 티켓을 끊고 슈투트가르트로 내려와서 집을 보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와 영상통화를 하며 집과 방을 보여주었고 당시 구하면서 봤던 다른 집 다른 방들보다는 조금 저렴한 월세를 제시하셨기에 크리스틴 아주머니네 하숙방을 계약했다. 슈투트가르트 도시 자체가 내가 공부하던 베를린보다 물가가 더 비싼 탓에 한 가정집에 작은 방을 쓰는 것이었는데도 내가 베를린에서 살던 원룸에 1,5배 월세가 더 비쌌다. 그때부터 이미 조금 불안했다. 내가 정말 인턴 급여로만 잘 지낼 수 있을지…
내가 처음 인턴을 경험한 곳은 이전 메르세데스 벤츠 브랜드의 자회사로 기술개발 서비스를 맡아 벤츠의 프로젝트를 서포트하고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벤츠가 필요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고 그 기술과 제품을 시험 검사하여 최종적으로 벤츠에 넘겨주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처음 출근해서 사원증을 받고 면접 때 만났던 팀장과 부팀장을 다시 만났다. 짧게 안부를 나눈 뒤 나에게 나의 멘토로서 인턴생활을 지도해주고 내가 인턴으로 참여하게 될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얀(Jan)을 소개받았다. 얀은 회사가 위치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회사에서 인턴을 거쳐 졸업논문을 쓰고 바로 정직원으로 입사한 친구였다. 내가 얀을 처음 만난 그 시기에 이미 얀은 그 회사 정직원으로 일한 지 4년째였고 인턴기간을 합치면 더 긴 시간 동안 그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상태였다. 얀과 처음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얀이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갑내기 친구라는 것에 반가움보다 부러운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인턴을 시작하고 있는데 얀은 나와 같은 나이에 이미 한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이끌어 가고 있었기에 나의 모습과 비교하며 얀을 부러워했다. 얀은 처음에 나를 데리고 건물을 돌며 회사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회사의 구조와 시험장비들을 보여주었고 마지막으로 내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회사의 시스템과 내가 주의해서 입력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첫 번째 인턴 이야기에서 쓴 것처럼 나는 이때 인턴을 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직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그래서 한국에서의 인턴생활이 독일에서의 인턴 생활과 어떤 점이 다른지 잘 모르고 비교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내가 독일에서 첫 인턴 생활을 하며 보고 배운 조금은 특별한 경험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새로 인턴으로 입사한 내가 우리 팀 동료들을 위해 빵과 음료를 준비한 일이다. 사실 이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넌 이번에 새로 들어왔으니 우리 팀을 위해 언제 빵을 준비해야 해 라고 알려준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입사하고 며칠이 안되어 어떤 다른 인턴이 인턴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떠나기 전날 우리 팀원 모두를 위해 집에서 구운 케이크를 준비한 것이다. 그러자 모든 팀원들이 한 시간에 모여 같이 그 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준비해준 그리고 이제 곧 떠날 그 인턴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한 마디씩 인사를 나누는 거였다. 나도 비록 그 친구와 며칠 같이 일하지 않았지만 케이크도 먹고 인사도 나누었는데 인사를 하며 물었다. 보통 떠날 때 이런 걸 하는 거냐고… 그러자 그 친구가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 그리고 자기가 생일일 때 그리고 회사를 떠날 때 보통 이렇게 빵과 케이크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때가 내가 이미 인턴으로 들어간 지 2주가 된 시점이었는데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주에 바로 독일 사람들이 아침으로 자주 먹는 브레쩰 빵과 몇 가지 마트에서 파는 포장된 케이크를 사서 회사에 두었다. 그러자 또 하나둘씩 모여 빵을 먹고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인턴 생활 잘하라고 격려도 해 주었다. 이렇게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내가 먼저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여러 가지 경우에 이렇게 회사 팀원들에게 무언가를 사서 베풀어 주는 걸 경험했는데 결혼, 출산뿐 아니라 자신이 회사에 근속한 지 5년, 10년, 20년, 30년이 될 때에도 빵과 케이크 등을 사서 오는 동료들을 봤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들어간 때에 떠난 인턴 친구를 통해 알게 돼서 너무 다행이었고 그렇게 나도 신고식?처럼 빵과 케이크를 베풀고 나니 기분도 좋고 숙제 하나를 내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인턴일을 시작하고 처음 몇 주 동안은 여러 시스템에 접근권한을 받고 회사 차량을 운행할 때 주의할 점들을 배우고 회사에서 제공한 인턴사원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배정된 프로젝트에서 내가 해야 할 과제를 받아 일을 시작했다. 팀장이 나에게 소개해준 얀 이 프로젝트 리더로 나에게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는데 처음에는 작은 일들을 맡았다.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 목록을 지금 회사 내에 있는 프로토타입 엔진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엔진 별로 정리하고 그 부품에 해당하는 부품번호들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런 문서작업 외에도 다른 도시에 위치한 시험용 차량 조립공장에 부품을 전달하는 일도 맡아서 했는데 이때 부품을 전달하러 갈 때 회사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인턴으로 있던 회사가 메르세데스 벤츠 자회사였기에 회사 차량으로는 벤츠와 벤츠의 자매 브랜드인 스마트 차량이 있었다. 부품 전달을 위해 주로 나는 벤츠 C-Class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 차량이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차량 Pool에 가장 많이 있었고 나는 수동기어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면허가 있었지만 그때까지 수동기어 차량을 운전해본 경험이 많이 없어 오토매틱 차량을 운전하길 좋아했는데 C-Class만 오토매틱 기어가 있었기에 자주 이용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를 자주 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건 정말 내 첫 인턴생활에 큰 기쁨 중에 하나였다. 인턴으로 일하며 여러 가지 부서에 소일거리들을 맡아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사무실 중앙 통로에 쌓인 물병이 부족하지 않게 채워 넣는 일이었다. 그곳엔 직원들을 위한 물병이 늘 쌓여있는데 직원들은 누구나 마시고 싶다면 그 물병을 가져가 마시면 된다. 그리고 다 마신 물병은 다시 그 중앙통로 구석에 모아두는데 이 모아진 빈 물병을 마트로 가져가 반납하고 새 물병을 사서 다시 중앙통로에 채워 넣는 일이었는데 그 일이 인턴인 내게 매주 주어지는 아주 중요한 일중에 하나였다.
인턴을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 정도가 지나 이제 매일 하루의 루틴이 자연스러워질 때 프로젝트 리더인 얀이 나를 찾아와 나에게 어떤 부속품 하나를 CAD로 직접 설계해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속에서는 자신이 없었지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 CAD 프로그램을 다뤄본 경험이라곤 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였고 학교에서 했던 CAD과제들은 회사에서 필요한 제품의 설계 수준과 현저히 달랐기에 난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그러나 내가 혹 실수하더라도 나를 도와줄 많은 CAD 전문가들이 그곳에 있었고 내가 맡은 그 과제를 잘못하더라도 그걸 바로잡아주고 끝내 그 부품이 생산될 수 있게 도와줄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실수가 용납되고 이해되는 인턴이라는 신분이었기에 나는 곧 차분한 마음으로 그 과제를 해나갔다. 처음엔 역시 어려웠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자꾸 그걸 벗어나기 일쑤였고 처음 완성시킨 모델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CAD 설계의 프로세스대로 만들지 않아서 나중에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해야 되는 일이 생겼다. 힘들었지만 어려운 과제에 부딪혔던 그때가 나에게 있어 가장 많은 것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맡은 그 과제를 잘 해내야 했기에 평소 독일어에 자신이 없어 동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말도 잘 걸지 않았던 내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말을 걸고 함께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독일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고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적인 내용들을 실제로 적용해보고 실전에서 쓰이는 다른 방법과 방식들을 배울 수 있었다. 정말 나의 힘이 아닌 많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인턴 생활이 끝나갈 무렵 그 부품 설계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인턴기간을 이틀 앞두고 내가 설계한 부품이 실제 만들어져 프로토타입 자동차에 설치되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내가 부품 설계 분야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내가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 만들어낸 부품이 실제로 내 눈앞에 보일 때 보람되고 그 부품이 설치되어 잘 작동할 때 행복한 기분까지 들기 때문이다.
- 작가: Eins / 아우디 회사원
직접 경험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입니다.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독일로 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중 - 본 글은 Eins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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