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이민자들이 관공서를 이용할 때 느끼는 차별은 노골적인 모욕보다 학력과 경력을 낮게 평가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오히려 자신의 경험이 과장된 것으로 취급될까 두려워 침묵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독일 연방내무부가 의뢰한 대규모 연구는 이러한 경험이 일부 직원의 태도에 그치지 않고 행정기관의 관행과 구조 속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정부의 대응은 기대보다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쌓은 학력과 경력, 반복해서 낮게 평가받아
tagesschau의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독일로 이주한 마리아(가명)는 독일어를 배우고 다시 공부해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본국에서 받은 직업교육은 독일 행정기관에서 끝내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구직 과정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다며 “당신 같은 사람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였습니다. 현재 독일 시민권까지 취득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이 반복해서 과소평가됐으며, 그 배경에 출신 국가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정기관에서 드러난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
이러한 경험이 개인적인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지난 2월 발표된 ‘제도와 인종차별(Institutionen und Rassismus, InRa)’ 연구에서 확인됐습니다. 연구진은 일부 행정기관에서 특정 이민자를 처음부터 교육 수준이 낮고 의욕이 부족하며 독일 사회와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민자의 학력과 경력에 대해 무시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듯한 태도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모든 조사 기관에서 확인
InRa 연구의 핵심 결론은 인종차별이 독일 행정기관의 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고용센터(Jobcenter), 외국인청, 경찰, 세관, 사법기관, 보건 및 청소년 복지 기관 등 조사 대상이 된 모든 기관에서 차별적 관행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공공기관 직원 전체가 일반 국민보다 일관되게 더 강한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직원 대상 설문에서는 행정기관 종사자들의 민족적 차별 인식이 독일 전체 인구보다 전반적으로 높다고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관행과 제도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
문제는 개인의 명백한 적대감이 없어도 기존의 업무 관행과 제도, 판단 기준을 통해 차별이 반복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인종차별은 노골적인 발언보다는 고정관념, 미세한 차별적 언행, 무례한 표현, 행정 결정과 지원 과정에서의 불평등한 대우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백만 유로 투입한 연구, 정부는 ‘짧은 소식’으로 공개
InRa 연구는 독일에서 지금까지 시행된 기관 내 인종차별 연구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조사입니다. 연방내무부(BMI)는 수년 동안 약 600만 유로를 지원했으며, 연방과 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여러 기관을 조사한 최종 보고서는 약 250쪽에 달합니다.
그러나 연방내무부는 결과를 별도의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 없이 홈페이지의 ‘짧은 소식(Kurzmeldungen)’ 항목에만 게시했습니다. 일부 지방 행정기관은 언론의 문의를 받을 때까지 연구가 발표됐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연구책임자 게르트 피켈(Gert Pickel)은 실무 담당자들과는 원활하게 협력했지만, 발표 방식을 보면 내무부 지도부가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했습니다.
헤센 고용센터, 쉬운 언어와 다국어 온라인 신청 확대
일부 행정기관은 연구 결과를 실제 업무 개선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헤센주 마인킨치히군(Main-Kinzig-Kreis) 고용센터는 2015~2016년 대규모 난민 유입 이후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상호문화 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난민 경험이 있는 직원도 채용해 번역과 신청서 작성, 상담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InRa 연구 발표 이후에는 행정기관의 의사소통을 더욱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를 쉬운 독일어로 제공하고, 행정 결정문을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며, 이용자가 자신의 모국어로 온라인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무부 “차별은 절대적인 예외” 강조
연방내무부는 연구 결과를 향후 국가 인종차별 대응계획에 반영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무부는 차별적 행위를 방지하는 대책이 이미 부처와 산하기관의 교육과 업무 과정에 포함돼 있으며, 내부 신고 창구와 연방차별방지청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방이민난민청(BAMF)에서는 앞으로 신고 절차를 더욱 명확히 안내하고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동시에 내무부는 압도적 다수의 직원이 전문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차별은 ‘절대적인 예외’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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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이유도 살펴야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인종차별 대응 교육을 진행하는 독일 민주주의교육협회의 크리스타 칼레치(Christa Kaletsch)는 민원 건수가 적다고 해서 차별이 적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차별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부정하거나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고, 심한 경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반응을 겪은 사람들은 신고 자체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연구 결과를 실제 변화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
독일 행정기관에서 인종차별이라는 표현 자체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된 점은 과거보다 진전된 변화로 평가됩니다. 이전에는 교육 과정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방어적인 반응이 나타났지만, 현재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습니다. InRa 연구의 권고안도 국가 차원의 행동계획과 일부 주·지방정부의 개선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연구가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려면 독립적인 신고 창구와 투명한 판단 기준, 정기적인 교육, 다양성을 고려한 채용뿐 아니라 정부 지도부의 명확한 문제 인식이 필요합니다.
- 작성: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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