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 먹도록 나는 왜 제대로 하는 게 없을까?
아니지, 할 줄 아는 게 뭘까? 한심하다 정말.
아이는 유치원으로, 남편은 회사로 집을 나서고 나면 아주 잠시 혼자 남은 것에 대한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전날 설거지했던 그릇들을 정리하고 때로는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왠지 모를 허무함이 찾아오면서 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중 가장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 바로 ‘왜 난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을까?’ 였던 것 같다. 특히 외국에 살면 갖춰야 할 스킬들이 많은데 그중에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곤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운전인데, 큰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스피드를 두려워하는 바람에 자동차 운전은 예전부터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동차 게임조차도 조금이라도 빠르다고 느껴지면 온몸이 얼어붙고 지나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치 사고가 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종종 있었다. 딱 한번, 한국을 떠나기 전, 자동차 면허를 따 보겠노라 큰 마음을 먹고 도전했으나 그저 엑셀만 밟고 일자 도로 50m만 달려도 되는 주행시험마저도 가까스로 패스하는 나를 보며, 나는 틀렸다 하고 미련 없이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대중교통이 잘 마련되어있는 베를린이라 할지라도, 사실 자동차만큼 편하디 편한 교통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카시트에 아이를 앉혀서 유유히 시내를 누비는 엄마들이 그렇게 부럽다. 심지어 생활 이동 수단인 자전거조차도 너무 겁이 나서 단 한 번도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다. 베를린은 특히 자전거 도로가 지나치게 잘 닦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곁으로 큰 버스나 빠른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그 순간들이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서 시도해보지 못했다. 요즘 한창 붐을 일으키는 전동 씽씽이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딱 한번 타보고 손절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용기가 넘쳐나서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그 쇳덩이를 혹은 빠른 그 무엇들을 자연스럽게 잘만 몰고 다니는 걸까?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경력단절이 주는 무력감이 나에겐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결혼을 결심하기 1년 전까지 어떻게든 나의 전공을 살려서 무엇이라도 일을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은 꽤나 씁쓸했다. 심지어 전공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마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동일시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베를린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유학을 나오거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알게 모르게 비교가 되었고, 다들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바탕으로 이 땅에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그에 비해 나는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자기비판의 늪에 빠지고 나니, 매일 쳇바퀴 위에서 집안일만 해대는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 모습만 남더라.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하루하루 꿈꾸며 열심히 살아내었던 과거의 젊은 나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이렇게 할 줄 아는 것 없이 덩그러니 베를린에 살고 있는 내가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딸이 어렸을 때야 손이 많이 가던 때라 우울한 생각이 들 때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꽤 자랐고, 육아에 전념한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허무해지며 지쳐갔다.
내 성격이 너무 답답했다.
왜 모든 일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생각하고 실행하면 될 일들을, 어떤 의미를 찾기 전까지 끝까지 고민하고 갈등하고 끙끙 앓고 있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지나치게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계획과 걱정까지 끌어안게 되고 결국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만으로는 지구 몇 바퀴를 돌고도 남았으나 실제로 나의 걸음은 단 한 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하는, 매사가 이런 식이 었다. 남편이 기껏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일일이 안 되는 이유로 조목조목 되받아치고, 그러면서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울고 있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뫼비우스 띠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무슨 일이든 다 잘될 것처럼 응원해주는 초긍정 인간인 내가 정작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드리우며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손가락질만 해댔다. 하지만 사회적 체면과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였을까? 아무렇지 않은 듯, 마치 잘 살고 있는 것처럼 껍데기만 채워나가는 비정상적인 나의 모습. 하나님이 나를 만들 때 실행력과 용기 따위는 단 한 톨도 넣어주시지 않았을 거라며 원망하고 주저앉아있는 나의 모습이 정말 한없이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숨만 푹푹 쉬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2개의 신호등이 연달아있는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초록불을 확인한 후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고, 두 번째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갑자기 내 귓가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넘어선 압도적 크기의 ‘빠앙-‘ 경적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편 1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 집채만 한 덤프트럭이 멈춰있고, 나는 빨간불로 바뀐 횡단보도 중앙에 서 있었다. 상황 파악을 하는 몇 초 동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남은 횡단보도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질주했다. 분명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렀고, 결과는 몇 초 만에 판 갈음 났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덤프트럭 운전자가 나를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까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얘기도 못하고 덤덤하게 하루를 보냈지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그 당시의 충격이 생각나면서 여전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 가득히 눈물이 차올라 작은 두 개의 구멍으로 분출해 내듯이 그렇게 틈만 나면 굵은 눈물방울들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이 예고도 없이 내 삶으로 훅 들어왔다. 단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간에게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는 것은 거저 얻는 축복이다. 비록 그 하루가 버겁고 지쳐 살아내기를 포기하고 싶은 하루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멀쩡히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분명 선택받은 삶이다. 그렇게 살아있음의 황홀함을 맛보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모든 일이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억지로 의미 부여를 해가면서 일을 만들어 가던 나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지겹고 짜증만 가득했던 집안일도 내가 살아있음으로 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일로 느껴지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 조차가 감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쓸데없는 인간에서 선택받은 인간으로 시선이 옮겨지자 오히려 진짜 내 모습이 보였다.
높은 목표치를 향해 억지로 늘이고 늘여진 짧은 고무줄. 나는 그 고무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딱 그 정도 짧은 고무줄의 한계를 비로소 보게 된 것이었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팽팽히 긴장된 인생의 고무줄 한쪽 끝을 놓아주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초라하게 짧을 거라 예상했던 나의 고무줄은 꽤 넉넉한 길이었고 그 자체로도 삶을 살아내기엔 충분했다. 오히려 아름다웠다.
높디높았던 나만의 잣대를 무너뜨리고 나니 내가 가진 고무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그러자 오히려 땅에 박혀 결코 움직일 수 없었던 발걸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일구어낸 것,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안 되는 것을 붙잡는 에너지로 되는 것을 붙잡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완벽하게 잘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것들에 도전할 용기가 조금씩 생겨났다. 20대를 함께했던 전공도, 특별한 교육과정의 유무도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이 하루 동안 그저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결과물이 허술하고 엉망일지라도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았다. 남들이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이 모든 일이 마법처럼 한 순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베를린에 산지 8년 차, 인생의 30년을 훌쩍 뛰어넘는 때가 되어 이제야 남들과 비교해서 얻어지는 상대적 감사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주어진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처럼 살아내는 것, 그뿐이다. 곁에 누군가를 좇으며 혹은 높은 이상향을 좇으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하루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이모양’ 밖에 안돼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나’ 여서 이렇게라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울지니.
-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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