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계속 쾰른의 날씨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되는 것 같다. 밖에 나갈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자기 전 휴대폰으로 내일의 날씨를 체크하고, 자고 난 후 커튼을 열어 창문 밖의 날씨를 체크하고, 오후의 예상 날씨를 체크하는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날씨는 일상생활에 있어 우리의 기분과 스케줄을 좌지우지하는 아주 영향력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5월과 6월에는 큰 나무들에 피어난 흰색 꽃가루 같은 것이 온 공원과 동네에 날아다녀 길거리 및 호수에 둥둥 떠다니고, 하루는 여름이 오는 것을 알렸다가 또 다른 하루는 갑자기 초겨울 같이 추워졌다가를 반복하여, 거참,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구나, 라는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7월이 되면 아주 많이 더운 여름이 되겠지? 쾰른의 여름은 아주 덥다고 들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무더운 여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7월이 되어도 한 주는 비와 구름만 가득하다 또 다른 한 주는 햇빛이 쨍쨍하다 35도까지 올라가서 이제 진짜 여름 시작이구나 싶더니 다음 날의 최고 기온은 19도가 되어 버린다. 유럽 날씨는 이랬다 저랬다 하여 겨울옷 정리, 여름옷 정리를 하기 애매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옷 정리를 할 수가 없다. 다행히 나는 옷 욕심이 없어 사계절 옷을 작은 붙박이장에 모두 담아 넣을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옷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참 큰일이겠다 라는 생각이 문뜩문뜩 들 정도다.
이번 주는 비 소식이 많은 한 주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비가 그칠 때 잠깐 슈퍼를 다녀오거나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한국의 장마와는 달리 쾰른에서의 비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쏟아지는 폭우가 한차례 지나고 나면 우산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얇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비가 아주 잠시 멈춰주는 시간이 있다. 그때를 기회로 빨리빨리 움직여 다음 비를 피할 곳으로 이동하여야 하는데 타이밍을 잘 못 잡을 시에는 비에 홀딱 젖은 생쥐꼴은 피할 수 없게 돼버린다. 이번 주의 비는 나와 텔레파시가 잘 통하였다. 토요일 저녁, 친구를 만났을 때에도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는 비가 올 듯 말 듯싶다가 가게에 들어가서 맥주를 주문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역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바라볼 때 가장 기분이 좋은 비는 폭우다. 뭔가 마음 속의, 머릿 속의 복잡복잡한 것들이 같이 씻겨내려가는 기분이다. 친구와 나는 가게 앞 큰 파라솔 밑에서 폭우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비가 너무 세게 쏟아져 대화가 원활히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감사하게도 비가 그쳐졌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전 내도록 비가 내려 오후에 친구와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집을 나서려고 보니 비가 그쳐 있었다. 쾰른 중앙역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러 가서도 비가 올 것을 대비하여 비를 피할 수 있는 큰 파라솔 밑의 좋은 테이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궂은 날씨에도 pre-wedding이 이루어졌다. 신랑 신부는 턱시도와 흰 드레스를 입고 신부의 자전거 뒤에 깡통들을 달아놓고 그 뒤를 친구들이 따르는데 깡통 소리가 얼마나 활기찬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 도시는 찬사를 보내나 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폭우가 예상되었기에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집 안에서 보아도 발코니 안으로 까지 뻗히는 빗방울에 폭우 중에 폭우구나 생각을 하며 집에 있었는데, 저녁 6시 반이 되었을 무렵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연구실에서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터널에 장화의 반 이상이 되는 높이까지 물이 찬 것을, 그 물을 헤치고 집으로 가는 중임을 인증하는 사진들이었다. 거기다 라인강도 범람했을 거라는 말에,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집에만 있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물난리와 불난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한국도 이제는 동남아와 같은 날씨로 변하고 있다는 소식도, 쾰른도 여름에 이렇게 습도가 높지 않았다는 이야기들도, 농부가 아닌 도시 사람들이 날씨 변화에 민감해지고 환경 보호 이야기가 뜨거운 토론 주제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느껴진다. 습도가 높아진 쾰른(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여름 습도를 생각하면 아직 한참 밑이다)의 여름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그리고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적응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여름에 쾰른 혹은 주변 국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에 오실 일이 있으신 분은 얇은 옷만 챙기는 것이 아닌 꼭 후드 집업, 청자켓, 가죽잠바 등도 함께 챙겨 오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오자마자 강제로 옷 쇼핑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 작가: 몽글맹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쓰면서 정리합니다. 주로 독일에서의 일상 및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젠가 기억하고 다시 꺼내보고 싶을 작고 소중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 본 글은 몽글맹글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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