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노천카페도 문을 열었다. 추워서 앉아보지는 못했지만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옆 카페에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것만 보아도 힐링이 된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는 비타민 C와 강황 요법을 받으러 간다. 남편이 바쁠 때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간다. 클리닉이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 편하다. 항암 환자가 혼자 지하철을 탄다고 걱정하실 분도 계시겠다. 뮌헨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만 빼면 한국처럼 붐비지 않는다. 기대보다 깨끗하다. 그래서 좋아한다. 뮌헨의 지하철 우반 U-Bahn을. 비타민 C 요법만 받을 때는 30분. 강황과 같이 받을 때는 1시간이 걸린다. 난 잘 모르겠는데 우리 언니가 내가 비타민 C 요법 받는 것을 좋아한다. 비타민 C 맞는 날은 얼굴이 더 좋다고.
대체 요법과 항암을 맞는 날엔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 언니가 해주는 죽 같은 해독 주스만 먹는다. 얼마나 큰 대접에 담아주는지 먹을 때마다 매번 놀란다. 요구르트를 먹으면 종일 배에 가스가 차서 요즘은 안 먹고 있다. 사흘 정도 안 먹었는데 가스도 안 생기고 속도 편했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는 항암 전 피검사를 한다. 이번 주 여의사는 Dr. Ackermann 악커만 선생님. 얼굴만 봐도 맑고 선량한 사람 있잖나. 대화를 나눠보면 더더욱 좋아지는. 항암 전 CT를 찍는 날 주삿바늘을 세팅해 줄 때 처음 만났다. 암병동에도 이런 샘이 있었으면 했는데 암병동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다니. (이럴 때 복이 많은 건 ‘찬실이’가 아니라 나다!)
친절한 의사 샘을 만났을 때 물어봐야 한다. 항암약을 어떻게 맞는 건지. 남편이 마리오글루 샘과 통화를 한 후 알게 된 사실은 18주가 한 세트라는 것. 첫 9주와 다음 9주 사이에 휴식은 없다. 단지 검사만 있을 뿐.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 전까지 꼭 네 달이다. 아이가 김나지움 2년 차인 6학년이 되기 전. 바이에른의 늦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앞둔 때. 한국에는 추석이 오기 전. 올해 봄이 하도 추워서 올여름도 추울지 모른다며 바바라가 걱정하는 여름이 지난 후에. 항암이 끝나는 올 가을에는 옥토버 페스트가 열릴까. 1년에 세 번 봄, 여름, 가을에 우리 집 근처 마리아힐프 플라츠에서 열리던 상설 야외 시장인 아우 둘트는?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는 항암의 시간.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3시. 소요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북독일에 사시는 어느 독자님의 요청으로 나의 항암 일정을 밝힌다. 한국에서도 기도해 줄 분들이 많을 거라며 공개해 주기를 바라셨다.) 내가 항암에 성공한다면 지분의 사분의 일은 나를 치료해 주시는 독일 의사샘들. 사분의 일은 이자르강 산책길. 사분의 일은 보조 치료요법. 사분의 일은 언니의 식이요법일 것이다. 플러스알파도 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팔 할. 내 의지는? 이 할 정도. 지난 주는 약한 항암이었고, 이번 주에는 두 가지 약을 섞은 것. 세 번째인 다음 주가 센 항암이라고. 이번 주부터 근육통도 왔다. 특히 어깨와 목 쪽으로. 항암 후 첫번째 부작용이다. 입맛은 잃지 않았고, 산책은 잘하고 있다. 머리칼도 아직 그대로임.
아이와는 영단어 어휘 다지기에 들어갔다. 독일은 초등 3학년부터 영어를 시작한다. 4학년까지 2년 간은 단어만 배우는 왕초보 영어. 중등 과정인 김나지움에 들어가서야 교재다운 교재가 있다. 회화, 본문, 단어, 문법이 골고루 나오는. 김나지움 새내기 5학년인 아이가 지금까지 배운 테마는 1과 학교, 2과 가족, 3과 취미. 지금은 4과 주말편에 들어갔다. 문제는 배우는 단어의 수가 초등 때와는 달리 엄청나다는 것. 이것을 숙지하지 않고 6학년이 되면 무척 힘들어진다는 게 율리아나 엄마와 한나 엄마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6학년이 되면 제2 언어도 추가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라틴어, 친구들은 불어를 선택했다. 라틴어를 고집한 남편과 아이의 선택은 존중한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들과 같이 불어를 배웠으면 싶었지만.
기억난다. 작년 봄 처음 코로나가 시작하던 때를. 그때 아이는 초등 4학년 졸업반이었다. 내신 점수로 김나지움 커트라인이 정해졌다. 김나지움을 무난하게 통과했다는 아이의 자부심이 클 때였다. 그때 독일 책을 읽게 했다. 아이는 수학에 강하고 독일어에 약했다. 코로나로 후겐두벨 서점이 문을 닫자 아마존으로 원하는 대로 주문해주며. 그때가 시간이 많고 마음도 편하기 때문. 아이는 작년 가을 김나지움에 입학한 후로 책 읽기가 뜸하다가 최근 예전에 읽던 두꺼운 책들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나는 나 대로 계획이 있다. 아이와 5학년 때 배운 기초 영단어 다지기. 원칙은 배운 것만 복습한다. 선행 학습은 노. 아이가 수업 시간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학교 샘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라서.
공부 방법은 쉽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단어 10개씩 외우기. 5개씩 먼저 외우고 10개를 통으로 암기한다. 다음 날은 전날과 전전날 배운 단어를 체크한 후 새 단어를 시작한다. 한 주에 50개 단어를 무한 반복 암기하는 시스템이라고 할까. 아이는 주말에 쉬는 조건으로 단어 10개를 승낙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15분 정도. 영단어를 외우며 아이에게 절대 화내지 않겠다는 약속은 잘 지키고 있다. 화낼 일이 뭐 있나. 이 모든 순간들이 내겐 소중하기만 한데. 뮌헨의 노천카페도 문을 열었다. 코로나 시대의 큰 성취로 보인다.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워서 아직 노천 카페에 앉아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옆 카페에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것만 보아도 힐링이 된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작가: 뮌헨의 마리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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