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미셸 파이퍼의 <Never Forget>을 들으며
내게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간곡하게 항암 치료를 권유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분들의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기에. 나는 항암 반대주의자다.
눈 온 뒤의 이자르 강.
라디오를 듣다가 나를 일으켜 세운 몇 개의 음악 중 최고는 미셸 파이퍼가 부른 <Never Forget>이었다. 어떻게 잊겠는가. 이런 제목이라면. 예전부터 알던 노래는 아니었다. 좋은 노래는 첫 구절로 영혼을 사로잡는다. 내겐 이 노래가 그랬다. 아가타 크리스티 원작의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영화 OST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것이 내가 알던 그 여배우의 목소리라니. 뮌헨에 눈이 포근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이번 주는 시작부터 며칠 동안 폭설이 내렸고, 오늘은 비가 내려 눈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런 날에 들은 노래 <Never Forget>. 눈 오고 비 오는 날 따뜻한 침대 옆에 오렌지빛 등을 켜고 프레디 머큐리의 <Love of my life>도 같이 들었다.
밤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이방에 들른다. 밤새 세 번 정도 들르는데 한 번은 꼭 이불 킥을 하고 있다. 이불깃을 꼭 여며주고 오면 안심이 된다. 내가 암에 걸렸다고 하자 주변에서 여러 가지 추측들을 했다. 밤낮없이 브런치에 글을 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을 거라고 보기도 하고, 독일에서 알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게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내 성격의 문제로 보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억측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옆에서 보는 게 더 정확할 때도 있으니까. 글 쓰는 횟수를 줄이고, 앞으로 알바는 안 하고, 성격은 어떻게 뜯어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체력부터 키우는 걸로 방향을 정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자 초등 교사인 내 친구 J는 내가 수술을 받기 직전 자기가 아는 항암 치료 중인 어느 여선생님을 소개해 주려고 했다. 얼마나 씩씩한 분인지 전화 목소리까지 힘이 넘친다고 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강의 긍정 마인드를 가진 분 같았다.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 그것이 비록 암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분과 통화를 바라는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암이라는 인생의 암초에 걸린 내가 그분과의 통화로 위로와 힘을 얻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어딘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듣기만 해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나 역시 암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니 스스로 길을 찾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지 않나. 암이 준 소중한 기회를 외면해서는 안 되니까.
내게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간곡하게 항암 치료를 권유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분들의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기에. 나는 항암 반대주의자다. 10년 전에 사랑하는 이모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항암 후 완치라고 해도 될 만큼 긴 시간을 건강하게 살다가 전이가 된 경우였다. 이모의 마음이 급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암에 걸려보니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자연요법을 먼저 해보고 항암을 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누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정은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항암을 시작한 이모를, 그렇게 멀쩡하던 이모를, 봄에 잃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후에. 그것도 내겐 트라우마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항암을 반대하지만 다른 사람이 항암 치료를 받는 것까지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암 치료에 관한 한 개인의 의사와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목숨이 소중하지 않을 리가 있나. 죽자고 내린 결론이 아니란 뜻이다.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온전히 책임을 질 것이다. 후회도 원망도 않을 것이다. 그럼 대놓고 죽고 싶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 정신 나간 거냐고, 재수 없다고, 구독자 수가 절반쯤 줄어들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왜 내 병에 대한 치료법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지, 왜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내린 결정인데.
항암을 반대하면서 수술은 왜 받았냐고? 수술과 방사선과 항암 치료는 세트 개념이니까. 맞다. 나도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때는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는 게 정석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아니란 걸 알았을 때는 수술을 취소하기에 너무 늦었다. 남편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었다. 남편이 수술을 강력하게 원했기에. 그때 남편에게 말했다. 수술은 양보할게. 대신 항암은 강요하지 마. 수술 후 회복까지 최소 두세 달이 걸릴 것도 예상했다. 수술을 하면 몸 상태도 면역력도 바닥이 날 것도 예상했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항암을 받는 건 엄청난 무리고 부담이라 생각했다. 수술은 날 지나면 회복이라도 하지. 항암 하면서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못 먹고 걸을 힘도 없으면? 물만 먹어도 토하고 누워만 있으면? 그땐 누가 날 챙겨주나? 뭘 먹으며 어떻게 견디고 얼마를 버티나?
<암의 스위치를 꺼라>(레이먼드 프랜시스)라는 책에 의하면 암을 포함한 모든 질병의 원인은 세포의 기능 장애다. 저자에 의하면 세포의 기능 장애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바로 결핍(영양, 산소, 체온)과 독성이다.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먹어온 음식, 비만이나 운동 부족 같은 생활습관, 부정적인 생각이나 만성적인 스트레스 등이 합해져서 가장 약한 부분의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온 현상이다. 우리가 암으로 판정받을 정도로 악성 종양이 자라는 데는 짧게는 수년에서 십 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나는 암과의 싸움은 백전백패라고 생각한다. 수술과 방사선과 항암 치료로 암세포를 다 죽일 수도 없다. 그전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속의 어느 곳에서든 새로운 암세포가 다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암이 생겨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암을 미리 예방하는 것. 나처럼 암이 생긴 경우라면 예전과 180도나 360도 다른 환경을 만들어 몸의 면역력을 키워서 암의 성장과 발생을 억제하는 것. 그리하여 나의 최종 목표는 암과의 동행이다. 생각만큼 잘 안 되면 어떡하냐고? 별 수 있나.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자리에서 또 최선을 다하는 거지. 현미밥과 야채와 과일을 주식으로 하고, 암이 좋아하는 식단을 멀리하기. 예를 들면 흰쌀밥, 흰 설탕, 흰 밀가루, 흰 정제 소금, 육류, 유제품,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말이다. 암의 주 먹이인 설탕부터 차단한다. 적극적인 온열요법을 한다. 암은 42도 이상에서 죽는다고 하니까. 풍욕과 산책으로 산소를 공급한다. 한국에 가서 매일 현미밥과 청국장과 모둠 야채를 먹으며 온열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희망 사항이다.
수술한 지 6주 차가 되었다. 퇴원 후 매주 1킬로씩 체중이 빠지다가 이번 주는 빠지지 않고 그대로다. 다행이다. 아무리 먹는 게 부실해도 그렇지. 매주 1킬로씩 빠지면 어떡하나. 암과 관련한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은 채식주의자들은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그 대목을 읽는데 입 안에서 새콤달콤한 귤이 터지듯 신선함을 느꼈다. 어제는 처음으로 오전에 혼자 산책을 나갔다. 오후에는 아이와 한 번 더 나갔다. 두 번 다 이자르 강변을 걸었다. 눈 쌓인 이자르 강이 예뻤다. 눈발이 조금 날렸지만 날씨는 온화했다. 구독자님들이 댓글에 김샘 다이어트를 해보라고 해서 오늘 아침에는 8분짜리 스쿼트를 따라 해 보았다. 혼자 하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댓글로 ‘가지’가 몸에 좋다고 알려주신 분도 있고, 메일과 왓츠앱으로 ‘케일’과 ‘근대’ 정보를 알려준 분들도 계시다. 케일을 된장국에 넣으면 시래기맛이 난다고. 감사하다. 좋은 것을 나눠주시려는 마음 고맙게 받고 있다.
집 앞에 쌓인 눈.
- 작가: 마리 오
뮌헨에 살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북 <프롬 뮤니히><디어 뮤니히><뮌헨의 편지> 등이 있습니다. - 본 글은 마리 오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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