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살이, 모든 시작은 ‘집’으로부터
독일에서 집 구하기, 안 해 봤으면 말을 마세요
# 2018년 4월 중순 어느 날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익숙한 보험사 이름이 발신인으로 된 우편물을 받은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드디어 끝을 보는 건가.’
지난해 8월, 우리 가족(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은 베를린 라이프를 시작했다. 외국생활에 대해 막연히 장밋빛 환상을 꿈꾼 건 아니었지만, 정착을 위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나마 있던 환상도 날아갈 지경이었다. 먼저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독일에서 집이란 단순한 거처 그 이상이다. 집을 구하고 ‘안멜둥’이라는 거주지 등록을 마치고 난 뒤라야 정착을 위한 나머지 모든 절차가 가능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집으로부터 인 셈이다. 베를린은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려드는 힙한 도시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그 넓은 땅 많은 집 중에 우리 가족 살 집 하나 없겠냐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처음엔 분명했었다. 많은 이들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도 애써 내 얘기는 아닐 거라며 외면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는 베를린의 주택 시장을 이야기했고,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월세(독일은 전세가 없다)를 걱정했으며, 그 와중에 특히나 외국인으로서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직간접적 경험에 비춰 토로했다.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경로는 몇 가지가 있다.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를 통한 방법, 지역신문에 난 광고나 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광고지를 보고 직접 연락하는 방법, 커뮤니티(독일 최대 한인 커뮤니티인 ‘베를린 리포트’가 대표적)를 통한 방법,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중개인에게 의뢰하는 방법 등인데, 마지막은 비용 부담(보통 두 달 치 월세이다)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방법이 가장 보편적.
우리는 베를린에 도착한 직후 임시 거처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사이트를 통해 집을 찾는 데 주력했다. 원하는 지역, 방의 개수(이곳에선 거실도 방의 개념에 포함된다), 임대료 수준(당연히 처음 예상했던 목표치를 넘어섰다), 집의 구조와 시설(테라스 유무, 부엌 시설이 돼 있는지 등. 오래된 집의 경우 싱크대 등 아예 기본적 부엌 시설이 없는 경우도 있다) 등을 체크한 뒤 몇 곳에 ‘집을 보고 싶다’는 메시지나 이메일을 보냈다. 많은 경험자들이 ‘수십 군데 메일을 보내도 답이 오지 않는다’느니 ‘집을 구하다가 독일 생활이 끝날 것 같다’는 식으로 했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좀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원하는 지역을 넓혀 더 많은 집을 찾았고, 이메일을 보낼 때부터 주저리주저리 최대한 자기 어필을 했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락은 거의 오지 않았고, 어쩌다 연락이 닿아 집을 보기로 약속한 날 낯선 지리 때문에 길을 헤매다 5분 늦게 현장에 갔을 땐, 이미 자리를 뜨고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보통 집 하나를 볼 때 여러 팀이 동시에 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늦게 오는 팀을 기다려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immobilienscoute24.de(사진)나 immowelt.de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
초조함이 불안으로 바뀌어갈 무렵, 한국을 출발한 이삿짐은 도착 날짜가 임박해오고 있었다. 받아주겠다는 곳만 있으면 어디든 들어가 살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절박할 즈음, 다행히 원하는 동네의 두 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앞서도 말했듯 베를린은 주택 부족으로 집 하나를 두고도 세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집을 본 후 마음에 들면 신상 정보와 재정 상태 등을 기록한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는데, 이 지원서를 보고 집주인이 서류 면접을 통해 세입자 후보를 고르는 식. 계약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신원 보증과 재정증명도 서류상 이뤄져야 한다. 재정증명은 보통 직전 3개월치 급여명세서를 제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의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냥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은 것. 우리 역시 이 ‘서류 면접’ 과정을 거친 후 결국 현재의 집주인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케이 사인을 받은 우리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월세의 3배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내고, 열쇠를 받으면 입주할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보증금 부분에서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무려 일 년 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요구한 것이었다. 독일에서 보증금(Kaution)은 우리나라처럼 돌려주는 개념이 아니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고 집을 비울 때 집의 상태를 체크한 뒤, 하자가 있으면 그만큼 차감하고 돌려주는 방식인데, 집이란 게 처음 상태 그대로일 수 없으니 당연히 전액을 돌려받는 일은 불가능한 셈이다. 경험자들이 ‘받지 못할 돈’이라고 생각하라는 데는 그런 까닭이 있다. 그러니 일 년 치의 월세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였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을 생각해야 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한발 물러선 집주인은 6개월치 월세에 해당하는 주택보증보험을 들 것을 요구했고, 우리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했다가는 진짜 집을 구하다가 일 년이 갈 것 같았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어마어마한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를 몇 차례 정정하고 검토해가며 결국 사인한 뒤 생각했다. 이제 보험만 들면 진짜 끝이겠구나.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주택보증보험 최종 심사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게 지난 4월 초다. 보험 가입도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더없이 까다로웠던 탓이다. 독일 거주 6개월이 지나야 주택보증보험 가입 여부 심사 자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냥 가입 승인도 아닌 ‘심사’였다. ‘만일 6개월 뒤 심사를 거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갖고 살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베를린 생활 8개월 만에 우리의 집 구하기는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새로운 한국인 가족이 왔다. 그 가족은 역시나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속사포로 쏟아냈다. “집만 구해지면 진짜 다 끝날 것 같아요.” 그 심정을 잘 아는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오늘의 깨달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닌데 결국 끝이 나긴 한다!
- 작가: 어나더씽킹 in Berlin/공중파 방송작가,종합매거진 피처 에디터, 경제매거진 기자, PR에이전시 콘텐츠 디렉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유럽통신원 활동 중, ‘운동화에 담긴 뉴발란스 이야기’ 저자
현재 베를린에 거주. 독일의 교육 방식을 접목해 초등생 남아를 키우며 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고민합니다. - 본 글은 어나더씽킹 in Berl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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