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만 해도 그럭저럭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독일인들은 열이면 열, 모두 영어를 잘했기에 ‘독일이면 뭐, 나 영어는 좀 하니까 괜찮겠지.’하고 자신만만해 했는데… 완전 잘못짚었다. 구 동독지역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았다. 최대한 상냥한 표정과 말투로 ‘두 유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건네보지만, 종종 돌아오는 대답은 ‘나인 (Nein 아니요)!‘ 단호한 한 마디에 의기소침해져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선 적도 많았다. 한두 살 먹은 아기들도 몇 마디는 할 줄 알고, 말귀는 죄 다 알아듣는데…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니 독일어 능력으로만 따지면 나는 신생아나 마찬가지. 서른이 훌쩍 넘은 신생아가 되어 두 아이를 건사하려다 보니 하루하루가 버거운 난관투성이였다.
아이들 유치원 게시판에 붙어있는 공지를 읽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선생님께 설명해 달라고 하고 싶어도 그걸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그럴 때마다 일하느라 바쁜 남편에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번은 추운 겨울 아이들과 오들오들 떨며 오지 않은 트램을 삼십 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공사로 인해 이 정류장은 당분간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전광판 안내문을 읽지 못해서. 때마침 지나가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운전하는 흉내를 내었다, 두 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저 멀리 보이는 간이 정류장을 가리키시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난데없이 시작한 가족 오락관 ‘몸으로 말해요’ 게임. 몇 번의 시도 끝에 정답을 맞혀, 버스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지금이야 재미난 해프닝이라는 듯 웃으며 말하지만, 그날 밤 얼마나 큰 자괴감에 시달렸는지. 콧물을 훌쩍거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결심했다. 어른으로서 일 인분의 몫을 해내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기로!
장장 대기 6개월 만에 둘째의 유치원 등원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야, 드디어 독일어 수업에 등록할 수 있었다. 아는 말이라고는 추임새처럼 쓰이는 구텐탁(Guten Tag 안녕하세요)과 당케 (Danke 고맙습니다), 그리고 절대 쓸 일이 없는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뿐. 레벨 테스트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독일어 알파벳 아, 베, 체, 데 (A, B, C, D)부터 배우는 기초 1반으로 배정되었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배우는 독일어. 그렇게 12주 동안 기초 1반을 마치고, 연달아 12주를 더 다녀 기초 2반 수업을 끝냈다. 이후 시험 대비반인 중고급 과정에 들어섰을 때쯤, 드디어 독일어 신생아에서 벗어나 어린이로 업그레이드! 까막눈을 면했더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A4 사이즈 용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빡빡하게 채워진 유치원 통신문. 비록 느린 속도에다가 번역기의 도움도 받았지만, 혼자 읽고 아이들 준비물을 싹 챙겨 놓았던 밤에는 마치 천 피스 짜리 퍼즐을 완성한 듯 짜릿했다. 파업이나 교통 상황 때문에 정류장을 일시 폐쇄한다는 전광판 안내 문구를 술술 읽어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또 어찌나 가벼웠던지. 포장박스 뒷면에 조리법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케이크 굽기에 성공했던 날, 뿌듯함이 가득한 내 마음은 케이크만큼이나 기분 좋게 부풀어 올랐다.
시간을 갖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지만, 여전히 두려운 한 가지는 독일 사람과 대화하기. 교실에서는 자신 있게 나불거리던 입도 실제 상황에 부닥치면 마비된 듯 움직이질 않았다. 돌아가지 않는 것은 혀와 입술뿐 만이 아니라 두뇌도 마찬가지. ‘음… 음… 그러니까 그게 뭐더라. 삼인칭 단수 주어일 경우 동사 어미가 어떻게 끝나지? 이 명사는 남성이었나 중성이었나? 그럼 관사는 뭐지?’ 머릿속에서 뱅글거리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드디어 완벽한 문장 완성. 그러면 뭐 하나. 완벽한 문장을 뽐낼 기회는 이미 저만치 떠내려 가버린 걸… 어쩌다 참을성 없는 상대방의 한숨과 도리도리 고갯짓을 마주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오려던 말도 목구멍 뒤로 쏙 숨어버렸다. 실생활 독일어 중 최고 난이도는 전화 통화하기. 소아과 예약을 위해 용기 내서 전화했다가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ㅇㅇ소아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응답에 당황해서 콱 끊어 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난 전화질한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뿐.
예전에 영어 배울 때도 내가 이랬나? 아니면 오랫동안 남의 나라에 살면서 소심해진 건가? 왜 이렇게 입이 안 떨어지는 건지… 어학원 밖에서 말하는 게 무섭다고 토로했더니, 선생님이 의외의 조언을 해 주셨다.
‘‘어학원 문밖을 나가면 여기서 배운 건 잊어버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막 말해버려! “
수업 시간에 단어 하나, 문법 하나 깐깐하게 가르치고 지적하시는 분이라, 밖에 나가서도 제대로 된 문장 구사하는 걸 기대하실 줄 알았는데. 맞나 틀리나 생각하는 사이에 말할 기회는 도망가 버리니 일단 무슨 말이라도 내뱉으라고 하신다. 틀린 것은 다시 고쳐 말하면 된다고. 언어는 그렇게 실수하고 깨닫고 고치면서 느는 건데,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선순환에 올라타지 못한다고 하셨다. 고로 핵심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선수 치기. 선생님이 듬뿍 주신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얼굴에 두툼한 철판 하나 깔고.
그날부터 수업이 끝난 후,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있는 대형 쇼핑센터에 들렀다. 하루는 자주 가던 옷 가게에 들러 어디 있는지 뻔히 아는 아동복 위치를 물었고, 또 다른 날에는 지하 슈퍼에 들러 포장육을 집는 대신 정육 코너에 가서 고기를 잘라 달라고 말을 붙여봤다. 늘 매끄러웠던 건 아니지만,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작은 성공이 하나둘 모여 자신감을 채워줬다. 괜스레 자신감이 넘쳐 오르는 날이면 새로운 것도 시도해 보았는데, 덕분에 얻어걸린 독일 살이 정보들도 꽤 있었다.
마트 계산이 끝나면 직원들이 질문한다. 봉투는 필요하냐, 포인트 카드는 있느냐, 잔돈은 있느냐 하고. 늘 가던 마트에서 계산을 하던 어느 날, 봉투는 필요 없고, 포인트 카드는 여기 있고, 계산은 현금 말고 체크카드로 한다고 (내 딴에는 제법) 자연스럽게 말했다. ‘오늘, 나 독일어 좀 하는 것 같은데. 키햐.’ 자아도취에 빠진 내게 직원이 처음 듣는 질문을 한다.
“저기, 돈 필요하세요? “
‘아니오’ 한 마디로 의도를 알 수 없는 농담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괜한 자신감에 능청스럽게 맞장구쳤다. “돈이야 늘 필요하죠.” 그랬더니 점원 왈 “얼마 나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음… 한… 오천 유로쯤?” 갑자기 정색하는 직원. 그건 너무 큰 돈이라 안 된단다. 오천 아니라 오백, 아니 오십 유로를 불렀어도 안 줬을 거면서. 독일 사람들은 싱거운 농담도 참 진지하게 한단 말이지…
저녁에 집에 온 남편에게 신나서 말해줬다. 오늘 내가 말이지, 마트에서 말이지, 직원이랑 이런 이야기까지 독일어로 했단 말이지. 으스대는 나를 보며 남편이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식탁을 탕탕 내리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알고보니, 그 주부터 독일 마트에서 현금 인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객이 20유로 이상을 체크카드로 결제하면, 마트 계산대에서 수수료 없이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고. 체크 카드로 계산한 내게 직원은 현금 인출을 하고 싶은지 물었던 건데. 내가 갑자기 오천 유로나 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겠는데?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걸. 덕분에 독일어 연습도 했고 생활 꿀팁도 하나 얻었으니, 어설프고 웃겨도 이만하면 오늘도 성공이지(라고 믿고 싶다)!
언어 실력이 는 것인지, 얼굴의 철판이 두꺼워진 것인지 그 덕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이제 독일어 울렁증은 많이 극복했다. 씩씩하게 전화를 걸어 치과 검진 예약도 하고, 학기마다 있는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나 학부모 회의에 남편 없이 혼자 가도 더는 두렵지 않다. 까막눈을 면해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타인과 말을 주고받으며,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구텐탁, 당케, 이히 리베 디히’ 밖에 모르던 독일어 신생아가 많이 컸다. 이 정도면 독일어 청소년은 되었으려나? 아직도 생각만큼 터지지 않는 말에 낙담하기도 하기도 하고, 뒤늦게 깨달은 얼토당토않은 실수가 생각나 밤에 혼자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그럴수록 밖으로 나가 일단 들이대고 본다. 점원을 붙들고, 선생님을 붙들고, 아이들 친구 엄마를 붙들고. 두툼해진 얼굴 철판, 탄탄해진 독일어 실력으로 어른인 내 일 인분의 몫을 해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반드시!
- 작가: 오롱
<동독에서 일주일을> 공동저자. 한국에 나고 자람. 스위스, 미국, 독일을 거쳐 이제 막 영국에 정착. 언어, 문화, 정체성이 뒤섞인 콩가루 집안을 지키는 씩씩한 엄마.
- 본 글은 오롱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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