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고 스케쥴러를 펴는 깜깜한 밤, 내일 해야 할 일 목록 속에 당근 케이크 굽기를 추가한다.
부엌 창문 밑의 오래된 붙박이장 속에는 밀가루, 통밀가루, 아몬드가루, 아몬드 슬라이스, 커버춰 초콜릿, 각종 토핑 재료들이 떨어질 새 없이 채워진다. 또 다른 하부 장에는 흰 설탕, 갈색 설탕, 슈가파우더, 바닐라 익스트랙, 식용 색소, 베이킹파우더, 시나몬가루가 놓여있고 냉장고에는 몇 개씩 쌓여있는 버터와 크림치즈, 요구르트 그리고 계란이 보인다. 그밖에도 반죽을 섞을 적당한 크기의 사발들, 핸드 믹서며 나무 밀대, 고무 주걱, 체, 거품기, 유산지, 계량 저울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의 손길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대단하지도 않은 나의 베이킹 역사는 아마도 스물두 살 되던 해, 대학교 안에 위치한 카페 아르바이트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50대 중반의 여자 점장님은 제빵사는 아니셨지만 늘 뉴욕 치즈케이크를 직접 구우셨다. 홈베이킹이라는 말이 너무나 생소하던 그 시절,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카페 최고 인기 메뉴를 뚝딱 만들어 내시는 그 점장님이 어찌나 근사해 보이던지. 무작정 핸드 믹서와 짜는 주머니를 하나 구입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서 인생 처음으로 베이킹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정확한 계량 도구도 저울도 없이 종이컵과 흔한 밥숟가락, 찻숟가락을 이용하여 점장님께서 손수 적어주신 레시피로 화이트 슈를 만들어 보았다. 그 당시 가스레인지 밑에 하릴없이 놓여있는 부속품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던 우리 집 오븐은 -심지어 우리 엄마도 거의 사용하신 적이 없었던- 그 날 하루, 반짝 제 역할을 다했다. 화이트 슈는 첫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게 완성되었고 부모님도 분명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과물을 먹어 치우는 시간에 비해, 재료를 준비하고 구워내고 필링을 채우는 모든 과정들이 꽤나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졌다. 특히 일일이 재료들을 계량해야 하는 점과 일정한 온도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구워내는 행위가 나를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한 번의 홈베이킹 후 ‘빵은 사 먹는 것이지 절대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첫 번째 핸드믹서는 부엌 장 어딘가에 처박힌 채 나의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 언제부터였을까?
홈메이드 케이크와 쿠키가 내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버젓이 자리 잡게 된 그 순간 말이다. 이 시기는 앞서 말한 것과는 달리 정확히 언제라고 꼭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계속해서 나이를 먹었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동시에 베를린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 가운데 어느새 익숙해져 가는 그들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나도 모르는 새,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의 삶에 녹아든 것일지도.
나를 친 딸처럼 여겨주시는 독일 아주머니 댁에 초대받아 티타임을 가지게 된 첫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차마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 근처 카페에 파는 조각 케이크 몇 개를 사들고 갔고, 그러한 내 모습을 의아한 듯 쳐다보며 그녀는 말했다. “내가 케이크를 이미 구워두었는데, 왜 또 케이크를 사 왔니?” 뭐라고 변명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무척 당황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당시만 해도 집에서 직접 구운 케이크로 손님을 대접하는 티타임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내게 이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독일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종종 그녀는 계절과 분위기에 맞는 케이크를 만들어 나를 초대했다. 정원에서 직접 딴 사과를 이용한 타르트(Torte, 토르테)를 만들고 여름에는 상큼한 레몬을 갈아 넣은 크박 케이크(Quark kuchen, 크박 쿠흔: 시큼한 크림치즈 류의 크박을 가지고 만든 케이크)를, 가을에는 이웃집 정원의 포도들로 직접 잼을 담가 나눠주기도 했다. 또한 매년 겨울이 되면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향신료를 넣고 초콜릿으로 굳힌 케이크(Pfefferkuchen, 페퍼 쿠흔)를만들어 주었다.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식탁보와 그 위에 단정히 놓여있는 케이크, 예쁜 접시들, 찻주전자 그리고 찻잔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아이가 만 2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유치원 친구 생일 파티 초대를 받았다.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들도 함께 파티에 가게 되었는데, 어설프지만 귀여운 초콜릿 케이크가 생일 식탁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도 가끔 회사에서 수제 케이크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남편의 회사 동료 중 한 명이-그녀 또한 한 아이의 엄마였다.- 종종 케이크를 구워와서 다른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즈음에 주변으로부터, 이제 곧 아이가 크면 직접 케이크를 구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홈베이킹에 대한 벽은 높기만 해서 섣불리 마음이 열리질 않았다. 그러다 마트에서 손쉽게 빵을 구울 수 있는 케이크 믹싱 패키지* 를 구입해보았다. 내장되어 있는 가루 혼합물에 계란이나 우유 정도만 추가하여 핸드 믹서로 섞고 오븐에 굽기만 하는 정도의 과정은 다행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맛도 비주얼도 꽤 그럴듯했다. 가장 쉬운 초코 머핀부터 시작하여 과정이 조금은 번거로운 치즈 케이크를 굽는 데까지 성공했다. 특별한 기념일에도 구워 선물해보았고 집에서도 케이크를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화학적인 혼합물에 나의 인력이 일부 가미된 케이크에는 도무지 ‘내가 직접 만든’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힘들었다. 내 손길이 닿긴 했지만 지극히 미미한 부분이었고 나의 정성이 녹아있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했다.
이제 직접 케이크를 구워보아야겠다.
이 결심은, ‘계란을 넣지 않고 만드는 케이크는 없을까?’라는 고민으로부터 나왔다. 우리 딸의 절친으로 이웃에 살고 있는 아이의 생일에 케이크를 구워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에게는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서 케이크에 계란을 넣을 수가 없었다. 보통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케이크 믹싱 가루에는 무조건 계란이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드디어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만드는 케이크에 도전할 만한 구실이 생겼다. 괜한 책임감이 생겼다.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노 에그(no-egg) 케이크를 검색해 보았고, 사과 크럼블 케이크(Apfelstreusel Kuchen/아펠슈트로이젤 쿠흔)를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첫 도전이니만큼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비록 그 아이는 사과가 잔뜩 들어간 담백한 케이크보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선호했지만 내 인생 최초의 ‘손수 만든 케이크’라는 감동을 만끽하기엔 충분했다.
그 이후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무기한 집콕의 시간이 찾아왔고,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베이킹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작년 한 해동안 정말 많은 케이크와 쿠키를 구웠던 것 같다. 초콜릿 케이크, 당근 케이크, 딸기 생크림 케이크, 청포도 생크림 케이크, 치즈 케이크 등 여러 가지 케이크 만들기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워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쿠키도 레시피를 찾는 대로 구웠다. 그중 마가렛트 쿠키가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작은 봉지에 두세 개씩 담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재미도 정말 쏠쏠했다. 처음부터 모든 도구를 갖추고 시작한 베이킹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홈베이킹의 범주가 차근차근 넓어졌다. 특정 재료나 도구를 사용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장비를 갖추다 보니 불필요한 소비를 막을 수 있을뿐더러 사재기의 죄책감에서 또한 벗어날 수 있었다.
야무지게 거품기를 쥐고 쿠키 반죽을 섞는 우리 딸
사람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이십 대,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도 흥미를 잃었던 홈베이킹이 지금은 나에게 힐링이 되었다. 스스로도 이러한 나의 변화가 신기해서 그 이유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택, 집중 그리고 나눔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었다.
우선 홈베이킹은 필수가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삼시 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주부의 역할을 벗어난, 자발적인 선택의 시간이었다. 때문에 나만의 시간을 따로 떼어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작은 생각의 차이가 결국 나에게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매일 매 끼니마다 나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 보통 어림짐작의 눈대중 내지는 기껏해야 숟가락이나 국자로 대강 양을 맞추어 요리를 했다. 따라서 매 번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를 매번 머릿속으로 계속 되뇔 수밖에 없었다. 이미 8년 차 주부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스피드가 생명인 식사 준비를 위해서는 레시피를 눈으로 한번 쓱 훑고 난 후, 나만의 방식으로 쉽게 풀어내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재료마다 정확한 양을 저울로 계량하여 준비하고 순서대로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의외로 나에겐 힐링이 되었다. 각 재료들을 – 소금 1g까지도 – 저울에 달아 재고, 그릇마다 옮겨 담아 두는 과정들과 행위들을 통해서 평소 복잡했던 머릿속이 자연스레 비워졌고, 무언가를 굽는 그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어느 때는 일주일에 세네 번씩 케이크나 쿠키를 구워댈 때도 있었다. 가족 내의 소비 속도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달콤한 결과물들은 주변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투명한 포장지 속에 쿠키를 세네 개씩 넣고 예쁜 리본으로 장식한 후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보았다. 작은 정성으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온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조금씩 용기가 생긴 나는 가장 작은 1호 틀로 케이크를 구워 지인들에게 선물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다시 시작된 록다운(Lockdown) 기간에는 딸과 함께하는 베이킹 시간이 잦다. 그때마다 작은 손으로 거품기를 야무지게 쥐고 반죽을 섞거나, 앙 다문 입으로 힘을 잔뜩 주며 밀가루 반죽을 모양 틀로 찍어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망치기도 해서 엄마의 화를 돋우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웃음으로 승화된다. 사실 우리 집의 오래된 가스 오븐 때문에 유투버들이 구워 낸 모양과 색을 갖춘 결과물로 완성되지 않을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곤 하는데, 그 정도면 할만한 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직접 두 손으로 만든 것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는 독일의 문화가 참 좋다.
독일 친구들에게 내가 직접 만든 무언가를 선물해 보면, 그때마다 그들이 받는 감동이 얼마나 큰지를 체감할 수 있다. 비싸고 좋은 기성품보다 오히려 사랑과 정성을 다해 손수 제작한 것들에 특별한 가치를 두는 독일 사람들의 성향이 무척이나 반갑다. 반대로 그들의 마음이 담긴 정성 어린 선물을 받을 때면, 그마만큼의 따뜻함과 사랑이 오롯이 전달되어 가끔은 왈칵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완벽한 모양이나 색이나 맛이 아니면 어떠한가. 찍어낸 듯 정갈하지 않아도, 오히려 서툰 손맛이 묻어날수록 가치가 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이 힘든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문을 걸어 잠그는 동시에 마음의 문도 닫은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종종 작은 세상 속에 갇혀가는 것 같은 아득함을 느낀다.
“제가 이곳에 있어요. 외로워하지 마세요.” 비록 작디작은 쿠키 한 개, 케이크 한 조각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큰 외침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지금도 얼어붙어 가는 나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 어디선가 힘들어할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굽는다.
* 필자는 Dr.Oetker 브랜드의 케이크 믹싱 패키지(Kuchen backmischung)를 추천한다. 모든 케이크가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 HADA at HOME 하다 앳홈, Cooking tree 쿠킹 트리, 서담 SEODAM, 쿠킹 씨 Cooking See 유튜브 채널에는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들이 많이 있다.
특히 하다 앳홈 님의 ‘당근 케이크’와 쿠킹 트리 님의 ‘마가렛트 쿠키’는 재료와 과정이 간단하여 누구든 해 볼만 한 레시피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KIRIMI/KiRiMi 일러스트레이터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삶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득 영감을 받아 무작정 기록해보는 진솔한 이야기.
본 글은 KIRIMI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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