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비자란 비자수교국의 18세 이상 30세 이하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여행하고 공부하며 일하고자 할 때 발급받을 수 있는 비자다. 요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비자를 가지고 유럽으로 와서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데 나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때는 세상이 요즘처럼 가깝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땐 유능하지 않은데다 외국에 연줄까지 없으면 외국에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전에 내가 유럽을 4개월동안 여행할 무렵, 영국에서 여행이 끝나서 한 달정도 주욱 머물고 있는데 돈이 바닥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식당에서라도 일해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는데 하나 같은 대답이 비자가 없으니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때 내가 영국에서 잡일이라도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웬만해선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외국에서 살았을 것이고, 그렇게 버텼으면 어쩌면 영국에서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었을 수도.
어쨌든 이렇게 밖으로 나도는 성향탓에 외국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운명이고 자시고할 것이 없고 그저 타이밍이 맞아 결혼이란 걸 한 것 같다. 그때 마침 내 나이 결혼적령기였고, 나 좋다는 남자도 없었고, 집에서는 나이 서른이나 된 과년한 딸을 어떻게 치우나 싶어 점을 보러 다니고… 아참, 우리 친정엄마가 사주를 보러갔다가 점쟁이에게 내가 이혼을 두 번 할 팔자라는 말을 들었단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특히나 자식이 이혼하는 건 자식이 불행한 건 둘째치고 남보기에 남사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남의 집 숟가락 수까지 알알이 알고 사는 시골에서 한 번 결혼하면 왠만하면 참고 살아야지. 그런데 딸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혼할 팔자라니… 그리하여 나름대로 계산기를 튕겨본 결과가 아래와 같았다.
딸이 이혼을 하더라도 국내에서 하는 것 보다야 아무렴 외국에서 하면 좀 더 덜 남사스럽겠지. 외국에 사는데 이혼을 두 번 하던 백 번을 하던 알게 뭐람.
이리하여 나는 부모님의 흔쾌한 승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리고 독일로 왔는데, 살다보니 올해로 벌써 결혼 20년주년이 되었다. 내 나이 오십. 점쟁이 말대로 앞으로 이혼을 두 번 하려면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이혼을 해야하는데… 이혼하는데 에너지는 좀 많이 드나. 그래서 늙을수록 이혼하는게 쉽잖을 것 같고. 남편 방만구가 백퍼센트 흡족하진 않지만 싫어도 좋아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같이 사는 수 밖에. 그리하여 애 하나를 낳고 별 탈없이 살고 있다. 요샌 워낙에 외국으로 오는 젊은이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국제결혼도 예전보다 많아져 나의 국제결혼에 대한 노하우를 물어보는 사람도 좀 있다.
국제결혼을 잘 하는 비법은 어떻게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제결혼을 잘하는 방법은 국내결혼을 잘하는 방법과 같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건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못먹는 음식을 외국에서 먹고 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나쁜 짓이 외국에서 좋은 짓으로 통하지 않는다. 풍습과 음식과 문화들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수용할 수있는 선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좋은 사람은 외국에서도 좋은 사람이요, 한국에서 공부잘하는 사람은 외국에서도 공부잘한다고 보면 된다. 부모한테 잘하고 형제 자매와 사이좋게 지내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딜가든 좋은 사람이다.
가끔씩 독일 교민사이트에 고민이 올라온다.
관심이 가는 친구가 너무 개방적이라 원나잇을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이거 일반적인가요?
그럴리가. 서양이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이 원나잇을 밥먹듯 하고 또 그것이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남녀관계라고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제대로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성관념도 바르다.
독일여성과 연애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국여성과 연애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세상 모든 여자들은 모두 젠틀하고 자기를 배려해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좋아한다. 거기다 번듯한 직업까지있으면 금상첨화. 독일여자라고 다를 것 없다.
독일 남자친구한테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요?
한국 남자친구다 생각하고 해주고 싶은 것을 해주면된다. 평소에 뭐가 부족한지 잘 눈여겨 보고있다가 적절한시기에 필요한 물건을 사다주면 남자들은 고맙게 받는다. 나는 남편과 연애시 지갑이 좀 낡아보이길래 남편이 쓰던 것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지갑을 사서 선물해줬는데 아주 고마워했다.
독일 예비 시부모님, 장인 장모한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더도 덜도 말고 한국 어르신들한테 하는 것 처럼 하면 된다. 어딜가나 나이드신 분들은 젊은 사람들 붙들어놓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시부모님 얘기 잘 들어주고 간간히 리액션 해드리고 한 번씩 가서 한국음식 요리해 드리고 그러면 다 좋아한다. 독일어가 좀 안돼도 열심히 들으려고, 대답하려고 노력하면 그 부분을 가상하게 여겨 귀여워해주신다. 독일어 몇 마디로 리액션을 해드리면 엄청난 칭찬이 돌아온다. 그런데 주변분들 얘기를 듣다보면 어쩌다 외국인 며느리, 사위를 못마땅해하고 인종차별하는 시부모님 장인장모들이 계신다. 이런 어른들은 독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존재하고 세계 어디에건 존재한다. 너무 아니다 싶으면 쌩까면 된다. 나를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는 분들을 뭐하러 존중하는가. 안보고 살면 된다.
독일에선 한국만큼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르지 않는 것 같던데.
사람 나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에서 양가부모, 증인을 모셔놓고 간단하게 식을 치르거나 혼인신고만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안그런 사람들도 많다. 독일에서도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둔 사람들은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른다. 독일에 예식장은 없지만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큰 연회장을 빌려 밤새도록 파티를 하는 커플들이 많다. 그런 결혼식에 초대되어 가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기운이 딸려 밤 10시경에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새벽까지 논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커플들이 동거를 한 후에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을 제외한 나의 대부분의 지인들은 오랫동안 동거를 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태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신고를 했다.
국제결혼을 앞두고 뭘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할까요?
나는 부모님을 만나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한다. 양가 부모님들이 결혼을 앞두고 만나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신이라도 상대방 부모님을 만나봐야한다. 부모는 사람의 뿌리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뿌리를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국제결혼인데, 서양사람들은 자유분방하잖아. 결혼도 부모승낙 안받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한다던데, 꼭 결혼전에 부모님을 만나야할 필요가 있나… ‘
서양에서도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다. 제대로된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유분방하다지만 오다가다 만난 아무하고 만나서 살림차리진 않는다. 거창하게 집안을 보고 부모의 학벌을 보고 직업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인성을 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해도 만나서 한 시간이라도 함께해 보면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대충 감이온다. 독일말 중에 Bauchgefühl 이라는말이 있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배 느낌’ 정도, 속뜻은’감’ 혹은 ‘직감’ 정도. 당신의 Bauchgefühl이 때때론 주변사람들의 평판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특히 사람간의 만남에서는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감이 더 중요하다.
아무래도 국제결혼은 의사소통이 잘 안돼서 국내결혼보다 불편하겠죠?
불편한 거 맞다. 그런데 나의 경우를 보면 결혼초기 3년, 내가 독일말을 못해서 버벅대며 살아갔을 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남편 방만구씨와 얘기도 더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내가 독일말을 잘 못해서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어버버하는 초급 독일어로 술까지 마시고 방만구 씨와 대단한 토론까지 하며 열변을 토했던 적도 많다. (이상하게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외국어가 더 술술 잘나온다.) 모든 건 마음이다. 마음이 맞으면 언어가 좀 불편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주변에 국내결혼하신 분들을 한 번 보라. 그 분들이 매일 주고받는 일상대화의 수준이 어떤지. 그분들 일상대화 도중에 대단한 상급 한국어를 쓰지 않는다. 국제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생활 도중 독일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도, 논문을 쓸 일도 없으니 언어문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될듯하다. 물론 언어를 잘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국제결혼의 이혼율이 국내결혼보다 더 높지 않나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통계자료를 본 적이 없어서. 높을 수도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사는 것 보다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의 만남이다보니 오해를 할 확률도 높도 의사소통에 답답함을 느낄 확률도 높다. 그것이 이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부터 지레 겁을 먹고 국제결혼은 이혼한다던데 하고 결혼을 포기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혼이야 국내결혼에서도 많이 한다. 국제와 국내를 떠나 결혼이라는 것은 사람대 사람이 만나는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노력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내 주변엔 간호사로 독일에 오셔서 독일남자와 결혼하여 백년해로하시는 분들 참 많다. 그분들이 평생 서로에게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렇게 사시는 거 아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아직도 손잡고 다니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는 분들 보면 참 보기좋고 나도 노년에 그렇게 살고싶다.
국제결혼 뜻밖의 복병은?
나의 경우 음식이다. 마흔까지는 그것을 못느끼고 살았는데 마흔이 넘어가고 육아와 직장생활로 몸과 마음이지친데다 갱년기까지 오다보니 점점 옛날부터 내 몸에 익숙했던 것들을 찾게된다. 그중 첫째가 음식이다. 예전엔 피자, 스테이크, 스파게티, 절인 양배추, 돈까스, 삶은 감자 이런 요리들을 별 무리없이 먹고 소화했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가까워지자 한국음식만 먹고싶어진다. 찌게, 김치, 밥을 먹어야 한 끼 먹은 것 같다.
음식문제는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족내에서 대단히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요리를 번거롭게 두세 번씩 해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의 경우 방만구 씨는 최대한 자극적으로 먹는 사람이므로 파, 마늘, 생강, 카레, 사천후추, 고추기름 등을 요리에 많이 넣는다. 이에 비해 초등6년 미나는 초딩입맛이라 위의 것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는 한국음식만 고집한다. 그리하여 밥때가 되면 요리를 3번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리에 시간이 걸릴 경우 따로 먹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끼리 도란도란 모여앉아 같은 음식을 먹으며 음식에 대해 얘기해 보고싶지만 사정이 안되는 것을 누구탓을 하겠는가. 이 점이 최근 10년동안 생겨난 우리 집안의 문제라면 문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각자 먹고싶어하는 음식을 먹어야지.
어쩌다 한국인 부부집에 초대되어 전 가족이 둘러앉아 같은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고있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비오는 날은 부추전이지 하면서 두 양주가 머리맞대고 앉아 부추전에 초장(경상도에선 부침개를 초장에 찍어먹음)찍어 막걸리 한잔 걸치는 모습도 부럽다. 그런데 관대하게 생각해보면 이 음식문제 역시도 국제결혼에서만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다. 국내결혼에서도 부부가 각각 다른 식성을 가져서 따로 요리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가 있을 경우 아이의 것만 따로 요리하는 경우도 있으며, 파트너에게 알레르기나 병이 있어 음식을 가려서 요리해 따로 먹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상식’
마음에 드는 외국인을 만났다면 그 사람을 대할때 외국인으로 대하지 말고 고유한 한 사람으로 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인으로 대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독일인은 무뚝뚝하다던데, 일본인이라서 나를 싫어하나? 남미사람이라 정열적이겠지? 그렇지않다. 다 사람나름이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비단 외국인 뿐만 아니라 모든 타이틀이 달린 것들이 가지고 있다. 선생님, 대학생, 과장님, 국회의원, 스튜어디스, 경찰, 독일인. 사람을 고유한 그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직업이나 성별, 국적으로 대하게 되면 선입견이 생긴다. 차별도 그렇게 사람을 대해서 생긴 결과이다.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나 그녀를 독일인으로 보지말고 고유한 한 사람 토마스와 스테파니로 봤으면 한다.
외국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무슨 외계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국내든 외국이든 다 비슷한 데가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당신의 상식으로 생각해서 판단하면 된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생각해서 이건 상식에 어긋난다 싶으면 대부분 외국에서도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맞다.
당신이 지금까지 무난하게 세상을 잘 살아왔다면 파트너도 무난하게 잘 고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파트너를 고를때 너무 고민하지 말고 당신의 Bauchgefühl을 믿어라.
PS.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각각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선별해서 들을 수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외국에서 살아가고있는 교포로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자면 요즘 특히 한 나라 한 민족끼리도 생각이 극단적으로 달라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것 같다. 편이 극단적으로 갈라졌는데 그들을 중재해줄 누군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 작가: 오순이
2000년에 독일행, 마흔에 애낳고 엄마로, 아내로, 학부모로, 회사원으로 심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1인.
한국에 있을 땐 잡지사 기자와 케이블 채널 작가로 일한 적 있으며,독일에선 회계관련 직업교육을 받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돈세는 일을 하고 있음.
- 본 글은 오순이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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