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A – Abflug (이륙)
다시 돌아오게 된 독일
2014년 겨울 인천 국제공항 나는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앉아있었다. 동승인은 없다. 차가워진 두 손에는 여권과 비행기 티켓이 쥐어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작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일 년 동안 독일로 가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현실이 돼버리니 모든 게 꿈만 같이 느껴졌다. 그 꿈은 마치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정해진 듯하다가도, 한편으론 언젠가부터 정해진 일 같이 전개되었다. 고민이 길었던 만큼 결정이 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왔었다. 무언가 빠트릴까 걱정은 했어도, 떠난 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공항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강아지가 함께 배웅을 나왔다. 체크인을 마친 후 부모님은 한 끼라도 한식을 더 먹고 가라며 나를 식당으로 재촉하셨다. 몇 분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 그러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종종 말없이 내손을 꼭 잡았고, 아빠는 자꾸만 빠트린 것이 없는지 물었다. 식사가 끝난 후 출국장 앞에서 캐리어와 배낭을 건네받았다. 아빠가 공항에 도착한 후로 계속 짐을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두 어깨에 전해지는 가방의 무게가 새삼 묵직하게 느껴졌다. 부모님과 짧게 포옹을 하고 마지막으로는 허리를 숙여 강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강아지는 꼭 무언가 아는 것처럼 폭 하며 한숨을 내 쉬고는 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는 몇 미터의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딛다 돌아본 곳에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 유리문 사이로 나를 찾는 부모님이 보였다. 문 사이로 보이는 부모님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2013년 가을 독일에서 돌아온 뒤로 다시 4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일 년 동안 나는 살면서 가장 바쁜 때를 보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점은 미정이었기에 나는 독일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할 수도 있는 것 모두를 한국을 떠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봄에는 대외활동을 하고 여름에는 학교와 회사를 다니고 가을에는 졸업전시를 하며 독일어 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졸업전시회를 마치고 겨울에 들어설 무렵엔 곧바로 운전면허 학원을 찾았다. 시험을 등록할 때 달력을 보니 출국 전까지는 두 달정도가 남아있었다. 게다가 가장 빠른 운전면허 시험은 출국 일주일 전이었다. 시험에 떨어진다면 면허 학원비와 시험비를 모두 날리고 독일로 가야만 했다. 페달과 브레이크가 어디 있는지 모르던 나는 한 달 만에 속성으로 운전을 배우게 되었다. 면허 시험을 보던 날 시험관은 나에게 운전을 예전에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밤낮으로 이어진 엄마와 오빠의 운전 연수 덕분이었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한 후 얼떨떨한 얼굴로 운전면허 시험장을 나섰다. 그리고는 기뻐할 새도 없이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자고 있던 이민가방을 다시 꺼냈다. 먼지에 파묻혀있던 이민가방 위에는 여전히 일 년 전의 수화물 택이 붙어져 있었다.
이미 교환학생을 통해 독일을 6개월 동안 경험한 터라 지난번보다 수월하게 짐을 쌀 수 있었다. 짐 정리를 마친 후 가방을 방 한편에 세워두었다.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제 곧 주인을 잃을 나의 방 책상 위에는 독일에서 머물게 될 곳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놓았다. 부모님이 그 주소와 연락처를 보고 그저 딸아이가 어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면 조금 근심이 덜어질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독일에 가겠다는 딸아이를 보며 나의 부모님은 걱정을 제법 하셨다. 남자 친구만 생각하고 무턱대고 갔다가 상처를 받고 돌아오면 어떡하나, 독일에 가봤다지만 외국 생활이 낯설고 힘들지는 않을까 하며 엄마는 수시로 한숨을 쉬었다. 한숨 뒤에 나오는 엄마의 맺음말은 항상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라’였다. 객기 하나만으로 객지에 가서 그 나라 말을 새로 배워 살겠다는 딸이 부모님에게는 근심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이해해 주셨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셨다.
비행기 안의 전등이 꺼졌다. 좌석 앞에 놓인 태블릿을 눌러 확인해 보니 타고 있는 비행기가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석양이 진 구름 아래 펼쳐진 산맥을 내려다보며 둥지를 떠나 먼길을 이동하는 철새들을 생각했다. 계절에 따라 먹이와 번식할 곳을 찾아 이동하는 새들을 철새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에서만 생활하고 번식하는 새들은 텃새라 불린다. 떠나지 않는 새들이다. 하지만 종종 정해진 지역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는 새들도 있다. 길을 잃은 새들이다. 이들은 미조(迷鳥, 길 잃은 새)라고 불린다. 나는 이제 둥지를 떠났으니 텃새는 아닐 테지. 그럼 철새가 되어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미조가 되어버리는 걸까? 아니면 새로 가는 그곳에서 둥지를 틀게 될까?
비행기 창문을 닫고 눈을 감았다. “일단 떠나고 보면 알겠지”하며,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작가: vivaJain / 일러스트: Soorimm
우연히 독일에 와서 비스바덴에 6년째 거주 중입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본 글은 vivaJain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동의하에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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